2008. 07. 07  한국농어민신문에 실린 GSnJ 이사 이병오 강원대 교수의 글입니다.

농업 개방의 방파제

GSnJ 이사  이병오(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

  농촌의 고령화와 과소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개방화가 큰 원인을 제공하였지만 도시화의 영향도 작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개발도상국이나 선진국의 농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의 농촌지역에서도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 나가고, 도시부에 살면서 농촌에 가서 농사일을 하는 통근식 겸업농가가 늘고 있으며, 초등학교ㆍ우체국ㆍ상점들이 없어지고 있다. 다만 선진국의 경우 농촌주민, 농협, 지자체가 지혜를 모으고 합심하여, 농촌의 활력을 되찾는 자생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미·일 등 자생력 제고방법 주목

앞으로 FTA가 확대되고 DDA가 타결될 경우 개방화의 파고는 더욱 거세게 우리의 농촌으로 밀려올 것이다. 거대한 파고는 상대하기 버거운 것이 사실이지만, 농촌지역에 작은 방파제들을 많이 만들어 잘 대처하면 그 힘을 크게 약화시킬 수가 있다. 선진국들의 농촌도 그러한 방식으로 난국을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에게도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일본의 농촌지역에 위치한 농산물직매장과 향토식당(농가 레스토랑)의 예이다. 농산물직매장은 지역농협이나 행정에서 부지와 건물을 제공하고 농업인들이 운영하는 파머스마켓이다. 고령 농업인들은 소규모로 생산한 농산물을 소포장하여 아침에 매장에 갖다 놓으면 된다. 가격표에는 생산자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저녁때 문 닫을 때까지 팔리지 않은 물건은 본인이 회수해 간다.

이 직매장이 있음으로서 고령자가 생산한 소량의 농산물을 판매할 공간이 생겼다. 소규모경영은 통상 대량유통의 도매시장 경로를 이용하기가 어렵다. 이제 고령 농업인은 매일 매일 현금소득을 올리며 일하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 농산물직매장은 소비자에게 안전하고 신선하며, 이웃의 누가 생산했다는 것을 아는 안심을 보장해준다. 물론 가격도 저렴하다. 소비자들은 물건의 모양이 다소 예쁘지 않더라도 신뢰할 수 있기에 만족한다.

이곳에서는 100% 자국산 농산물만 판매하므로 수입농산물 판매에 억제력을 갖게 되고, 농산물자급률 제고에도 일조한다. 대개 이러한 직매장에는 농가주부들이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전통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향토식당이 함께 운영된다. 주말에는 소비자들이 아이들과 함께 시장 보러 와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간다. 미래의 소비자인 아이들에게는 자연 속으로의 즐거운 나들이 이며, 동시에 살아있는 식생활교육 및 농촌이해의 장이 된다.

고령농 참여 비즈니스 모델 창출

둘째, 미국에서 발원하여 유럽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도농 농업공동체 운동)의 예이다. 이는 주로 유기농산물의 소비자가 그룹을 형성하여 생산자와 협력하거나 농장경영에 참여하는 형태이다. 여기에서도 산촌에 위치한 소규모농장(10ha 미만)이 생산한 유기농산물이나 독특한 건강식품이 주 대상이다. 지방정부에서는 종종 관광버스를 제공하여 도시 고령자들이 이러한 농장을 돌면서 구경도 하고 식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

셋째, 독일의 농촌 동호회(Verein)의 예이다. 이 동호회는 취미그룹(음악, 스포츠, 관광, 자연보호, 전통계승, 요리, 자율 소방단 등)과 영리활동 그룹(어업, 수렵, 원예 등)으로 대별되는데, 농촌활성화를 추진하는데 중요한 허리역할을 한다.

도시민 함께 공동체 운동 펼쳐야

상기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힌트는, 농촌에서는 고령 농업인도 참여할 수 있는 소규모 비즈니스 모델들을 다양하게 창출하되, 도시민들의 호감을 살 수 있는 포인트(안전, 신선, 자연스러움, 고향의 편안함 등)를 잘 살려야 하고, 지역농협ㆍNPO(비영리 시민단체)ㆍ자발적 농업인 조직 등이 중간허리 역할을 하여 도시와 농촌, 생산자와 소비자, 농업정책 입안 과정에서 윤활유와 촉진제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