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07. 03 한국 농어민 신문에 실린 GSnJ 감사 이헌목 한농연 농업정책연구소장의 글입니다.

농민이 나서 ‘새 바람’ 일으키자

GSnJ 감사 이헌목(한농연 농업정책연구소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협상 이후 우리 농업계의 지휘부인 농림수산식품부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농민으로부터는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일반으로부터도 신뢰를 잃었다. 새 정부 첫 농업계 수장으로 취임한 장관은 석 달도 지나지 않아 ‘경질’ 얘기가 나돌고 있다.

만신창이 된 새정부 농업지휘부

한창 일해야 할 시기에 공무원들의 사기와 의욕은 바닥으로 떨어져 있고, 일의 방향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 급진전되고 있는 DDA협상, 공룡처럼 커진 국내대형유통업체들 간의 농산물저가판매경쟁,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유류대와 농자재가격- “뼈 빠지게 일해도 남는 게 없는” 농민들의 앞날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 농업계가 직면한 이 참담한 현실과 덮쳐오는 국내외 위기를 도대체 누가 책임지고 극복해야 한다는 얘긴가?

도대체 우리 농업계를 이끌어가는 책임자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쉽게 장관이, 대통령이 책임자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책임은 권한에 비례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민주주의의 요체인 이 말은 누군가 먼저 했을 것이다) 또한 권한은 농림공직자만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농업·농촌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과 조직, 모두가 크고 작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농림수산식품부장관과 산하의 공무원은 누구보다도 큰 권한을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정부의 역할이 크지만, 농업분야에서는 특히 정부의 권한이 크다. 한 해 13조5000억 원이나 되는 농업투융자사업과 관련된 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주도하고, ‘10만의 농림공직자’를 지도·감독하고 있다. 농협은 농업계 전문인력의 80%에 이르는 8만여명가까운 임직원을 거느리고 있고, 농업계가 번 돈(연간 2조5000억 원) 거의 전부를 가지고 있다.

농업계, 최선 다했다 할 수 있나

뿐만 아니라, 농촌지역 국회의원을 ‘꽉 잡고 있다’고 할 정도의 막강한 정치력을 가지고 있다. 진흥청과 기술센터의 1만 명 가까운 연구 및 지도인력이 우리 농업의 기술개발과 영농지도를 하고 있다. 농업계 대학의 1천명 가까운 교수는 학생을 가르치고, 새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정책을 제안하고 비판도 한다. 농민단체는 농민의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을 하고, 각종 정책심의회에 참여하고 있다. 농민들은 조합원으로서 농민단체의 회원으로서 농정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국회는 농민을 위한 농정을 위해 국정감사도 하고, 예산을 늘리려 노력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도 마찬가지다. 농촌경제연구원도, 한국식품연구원도, 농촌공사도, 유통공사도 우리 농업·농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누구에게 얼마나 큰 권한이 주어져 있고, 얼마만큼의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얘기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모두들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우리 농업계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정부는 농정의 수립과 집행에서 더 이상 잘할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가 더 이상 잘할 여지가 없는가? 농협은 더 이상 농산물판매사업을 잘할 수 없는가? 농협의 그 많은 순이익은 더 이상 요긴한 곳에 쓸 수 없는가? 진흥청과 기술센터는 더 이상 탁월한 신품종이나 농업기술을 개발할 수 없는가? 농산업 현장에는 첨단생명공학 이외에 더 이상 대학이 연구할 것이 없으며, 우리 농정에는 더 이상 문제와 대안을 발견할 수 없는가? 농민단체는 더 이상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없으며, 더 이상 통합된 목소리를 낼 수 없는가? 농민 개인은 조합을, 농민단체를 더 이상 변화시킬 수 없는가? 농업관련 어떤 기관도, 단체도 더 이상 잘할 게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패배주의 흐름 깨뜨릴 변화 시급

우리 농업계에는 새바람이 불어야 한다. 강력한 새바람이 불어야 한다. 우리 농업계의 이 익숙한 흐름, 패배주의의 흐름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해온 그런 생각, 그런 방법으로는 지금의 흐름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새바람은 그냥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과 조직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새바람을 일으켜야 할 것인가? 새바람이 불지 않으면, 변화하지 않으면 가장 손해를 보는 농민들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권한과 책임은 작아도 농업계의 모든 노력의 결과는 농민에게 귀속되고 있다는 ‘진실’을 알고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