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횡단열차는 태양을 향해 달린다

(10부)

 GSnJ 이사장 이 정 환

18. 바이칼의 신비와 브리야트 족의 ‘셔먼’

  날씨가 쌀쌀하다. 우리는 잠바와 두터운 스웨터를 준비하고 바이칼 호수로 향했다. 운전은 ‘막심’이라 부르는 예쁘장한 러시아 청년이 한다. 그는 우리나라 인천에서 1년 정도 일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한국말이 꽤 유창하다. 아마 한국어를 매우 열심히 공부한 것 같았다. 처음에는 민정이가 ‘막심, 막심’하며 너무나 다정하게 말하여 서로 사귀는 사이인가 하고도 생각했으나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바이칼 호수로 향하는 길은 일직선으로 곧게 뻗었고 길 양편은 전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햇볕은 빛나고 너무나 즐거운 드라이브였다. 민정이가 이처럼 숲으로 뒤덮인 지역을 타이가지역이라 한다며 이르쿠츠크 지역은 타이가로 둘러싸여 숲과 관련된 전설이 많다고 했다. 그 때 저 멀리 경찰차가 서있는 것을 발견한 순간 짙은 선글라스를 낀 경찰이 손짓을 한다. 또 걸린 것이다. 막심은 뭐라고 투덜거리며 경찰차로 갔다가 한참 있다 돌아왔다. 무슨 위반인지 모르겠으나 아마 돈을 좀 준 모양이다. 러시아에서 운전하려면 교통경찰과의 전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80년대의 풍경과 비슷한 것 같았다. 그런데 민정이 이야기가 재미있다.

“러시아에선 젊은이들이 절망하고 있어요. 일자리는 없고 이처럼 부정이 난무하고 치안은 불안하고. 러시아 여대생들 중엔 한국 남자와 결혼하여 한국 가서 사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학생이 많은데 놀랐어요. 러시아 남자들은 술만 먹고 게을러서 결혼하면 자칫 짐이 되기 일쑤여서 근면하고 성실한 한국 남자들을 좋아한대요. (내가 아내를 조금 으스대듯 쳐다보자 ‘조오아 하네’ 라고 말하는 듯 피식 웃는다.) 그런데 한국인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변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모두 부자라고 생각하고 신비감이 있었지요. 그런데 여행객이 늘어나고 여러 가지 불미스런 일이 생기면서 실망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본인 여행팀은 매우 질서 정연하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얌전하게 잘 움직이지요. 그에 반해 한국인 팀은 가이드의 설명에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소란스럽고 무례한 경우가 많아요. 참 달라요.”

  바이칼 호수 입구, 앙가라 강이 시작되는 곳에 이르렀다. 강의 입구 한 가운데 작은 바위가 물위로 솟아 있다. 이 돌을 ‘셔만 바위’라고 부르는데 옛날에는 강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아주 큰 바위였고 이 지역 브리아트족들이 그 바위를 신성시하여 이곳에 와서 소원을 빌고 제사를 지내는 성스러운 곳이었단다. 그러나 앙가라 강에 댐을 만든 후 강 수위가 높아져 셔만 바위가 거의 물속에 가라앉아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근처에는 박물관이 있어 바이칼에 관한 모든 것이 설명되어 있다. 바이칼은 깊이가 1,742미터나 되고 넓이가 남한의 1/3정도이므로 그 물의 양이 미국의 5대호 물을 다 합친 양과 맞먹고 세계 담수 총량의 1/5정도를 차지한다고 하니 입이 벌어진다. 그러나 호수가 높은 산으로 둘러 싸여 물이 흘러 나가는 곳은 오직 이 앙가라 강 하나뿐이란다. 그런 것이 바이칼과 앙가라 강의 신비감을 더해 준다. 바이칼에서는 공룡의 화석이 나오는가하면 바다에만 사는 바다표범이 떼 지어 산단다. 1600여 미터 깊은 호수 밑바닥에도 생물이 살고 있다고 하며 ‘갈라비얀카’라는 물고기는 거의 100% 지방으로 이루어져 유리처럼 투명하다고 한다. 바이칼은 336개의 크고 작은 강물이 흘러드는 깊은 호수이지만 염분이 없고 40미터 아래까지 들여다보이는 투명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사의였다. 그 수수께끼는 ‘보코플라프’라는 새우류가 호수로 들어오는 모든 오염 물질을 먹어 치워 정화시키기 때문이라고 해서 풀렸다. 호수 속에 자연 정화장치가 내장되어 있는 셈이니 그것도 더 할 수 없는 신비였다.

  겨울이면 바이칼 호수는 두꺼운 얼음이 얼고 자동차들이 통행하는 도로가 생겨 중요한 교통수단이 된단다. 그런데 신비하게도 셔먼 바위를 경계로 앙가라 강 쪽은 영하 30도가 넘는 혹한이 계속되는데도 겨울 내내 얼지 않는단다. 신비할 따름이다. 앙가라 강은 북서쪽으로 흘러 에니세이강을 만나 시베리아를 종단 드디어 북극해로 흘러든다.
 
  박물관을 나와 우리는 지붕이 뾰족한 목조건물의 멋진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마침 서울의 어떤 교회 신자들이 부부동반으로 와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매우 부유하고 여유 있는 사람들로 보였다. 어제 서울에서 비행기로 이르쿠츠크로 와서 내일 돌아간다며, 우리가 기차로 시베리아를 횡단 중이라고하자 아주머니들이 입을 모아 너무 멋있다고 부러워한다.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불안과 실수의 연속인데 남의 속도 모르고. 이 세상이 다 그런 것이리라. 남이 보면 멋있고 좋아 보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어렵고 괴로운 것아 있게 마련. 그래서 세상은 고해라 했던가. 그러나 우리는 ‘그렇고말고요. 우리는 정말 낭만이 넘쳐흐르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요’ 라는 듯 가슴을 펴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호숫가에는 노점상이 줄지어 생선을 구어 팔고 있다. 그 유명한 ‘오물’ 구이였다. ‘오물’이란 바이칼에서만 사는 생선으로 꽁치 비슷해 보였다. 여기서가 아니면 죽을 때까지 먹어 볼 수 없으므로 바이칼에 오면 반드시 먹고 가야 한다. 우리도 오물 구이를 몇 마리 사고 보드카도 한 병을 샀다. 유람선은 한 척을 통째로 세냈다. 아직 시즌이 아니라 손님이 별로 없어 선장은 모처럼 돈을 벌게 됐다는 듯 신이 났다. 배는 호수 한가운데로 향했다. 날씨는 춥고 바람이 제법 셌지만 우리는 마스터 갑판으로 올라가 바다처럼 펼쳐진 호수와 타이가, 그리고 그 넘어 눈 덮인 연봉을 바라보며 ‘아, 우리는 신비의 호수 바이칼 위에 떠있다’라고 속으로 외쳐본다. 갈매기는 오물을 나누어 달라고 떼 지어 달려들고 배는 호수 위를 힘차게 달린다. 추위를 잊는 데는 보드카 이상 가는 것이 없다며 민정이가 보드카를 권한다. 오물을 안주하여 잠깐 사이에 보드카 한 병을 다 비웠다. 분위기가 술을 마시는 듯 보드카가 달다. 평시에도 술을 잘 마시는 아내지만 한 모금도 나에게 지지 않고 마시려 들어 순식간에 한 병이 바닥났다. 그러는 사이 배는 호수 깊숙히 나아갔고 나아갈수록 파도가 거세지며 배가 흔들렸다. 민정이가 바이칼은 날씨 변화가 심해 때때로 돌풍이 일어 위험한 경우가 있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뱃머리를 돌렸다. 날씨가 너무 춥기도 했고 오늘 가야할 데가 한곳 더 있기도 하고.

  배에서 내린 우리는 바이칼 호반을 따라 걸었다. 호수가 고목나무에 울긋불긋 천조각이 잔뜩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브리아트족들이 소망을 비는 곳이란다. 우리나라 서낭당을 연상하게 하는데 우리의 서낭당이 바로 이 같은 브리아트족의 신앙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뿐 아니라 브리아트족도 우리의 장승 비슷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 장승의 꼭대기에 3개의 홈이 파져 있는데 윗 것은 천상, 아래 것은 땅, 가운데는 현세를 의미한단다.  아마 하바로프스크의 나나이인들의 장승문화도 브리아트족의 장승문화와 연계되어 있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장승문화는 중앙 시베리아에서부터 우리나라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다.

 브리아트 족은, 여자는 부정한 존재라고 생각하여 신성한 곳에는 가지 못하게 한단다. 그러나 브리아트 족에는 병을 치료하고 신에게 소원을 비는 역할을 담당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브리아트 족들은 그녀를 ‘셔먼’이라 불렀다. 우리나라의 무당에 해당하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브리아트족의 신앙은 우리 민족과 닮은 데가 많은 것 같고 그래서 바이칼의 브리아트족이 우리민족의 기원이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갖는 모양이다. 얼굴 생김도 몽고족보다 훨씬 더 우리들과 똑같다고 한다. ‘셔먼’은 퉁구스어로 ‘아는 자’란 뜻이라고도 하는데 앙가라 강의 ‘셔먼 바위’는 바로 ‘무당 바위’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호숫가를 걷다가 마침 호수에 쓰러져 있는 철골을 발견하고 그 위에 걸터앉아 밑바닥의 조약돌이 말갛게 들여다 모이는 바이칼에 발을 담갔다. 바이칼의 기를 온 몸에 받아갈 작정으로. 그러나 나는 너무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찬 기운이 뼈 속으로 스며들어 등줄기를 타고 전신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전율이었다. 민정이와 아내는 깔깔대고 즐거워한다. 그러는 사이 나는 몇 번이나 발을 담갔다 들었다를 반복하며 그 자극을 즐겼다. 그리고 바이칼에 온 것을 음미하고 또 음미했다.

  우리는 바이칼 호수를 뒤로하고 ‘민속마을’로 향했다. ‘민속마을’로 가는 길은 넓은 초원이 펼쳐져 하늘이 지평선에 맞닿았다. 하늘이 아주 낮아 보였다. 좁은 공간에서는 하늘이 무한히 높아 보이지만 무한히 넓은 공간에 서면 하늘이 낮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들에는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우리는 차를 세우고 풀밭으로 뛰어나갔다. 야생화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서투르지만 스케치도 했다. 주황색 야생화는 정말 아름다웠다.

   ‘민속마을’은 옛날 이 지역에 살던 여러 민족들의 건축물을 그대로 재현하여 놓은 곳인데 앙가라 강변 기슭 아주 아름다운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타이가의 통나무를 잘라 지은 집, 교회, 창고, 마을 공회당 등등을 둘러보는데 예쁜 여자가 하프를 켜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자 흔쾌히 응해준다. 우리는 그녀의 연주를 녹음한 CD 한 장을 샀다.

19. 눈보라치는 시베리아 4,500km를 걸어 남편을 찾아온 여인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말 할 수 없는 감동에 빠져 눈이 젖어드는 것 같았다. 이 부분은 다음 회에 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