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횡단열차는 태양을 향해 달린다

(11부)

 GSnJ 이사장 이 정 환

19. 눈보라 치는 시베리아 4,500킬로미터를 걸어서 남편을 찾아온 여인.

  저녁은 앙가라 강변에 있는 우크라이나 레스토랑으로 갔다. 통나무로 지은 아주 분위기 좋은 곳이었다. 민정이가 다니는 이르쿠츠크 대학에 교수로 있는 이근우 교수가 나왔다. 그는 키는 크지 않지만 아주 건강해 보이는 체격에 인상이 온화해 보여 금방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머리가 반쯤 벗겨져 나이가 좀 들어 보였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나보다 10년은 젊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전통 우크라이나 식으로 저녁을 먹고 보드카도 두병이나 비웠다. 이근우 교수는 겨울에 바이칼에 와서 호숫가에 있는 전통 러시아식 사우나에 들어갔다가 나와 얼음을 깨고 바이칼호수로 뛰어들면 그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믿어도 될까? 영하 30도의 날씨에 얼음을 깨고 물속에 뛰어들다니. 그러나 민정이도 그 맛은 정말 일품이라고 맞장구를 치니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한데. 그는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바이칼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데가 있어요. 보면 볼수록 빠져 듭니다. 정말 바이칼을 느끼고 즐기려면 배를 타야합니다. 배로 일주일 정도 걸려 바이칼을 일주하는 것은 정말 황홀해요. 중간 중간 시골 마을에 정박하며 하루 밤을 묵으면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쏟아지지요. 그리고 바이칼 북쪽에 있는 알혼섬에 가면 신비 그대로예요. 칭기스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이 있지만 그 작은 호수와 바위, 그리고 해안과 하늘, 그 신비스런 경관은 정말 사람을 매혹하지요. 언제 꼭 한번 일주 여행을 해 보세요.”

  나는 가슴이 뛰는 것 같았다. 당장 계획을 세워 다시 오고 싶었다. 이번 여행은 시베리아를 열차로 횡단하는데 있지만 정말 시간을 가지고 느긋하게 시베리아와 바이칼의 정수를 맛보고 싶은 생각이 나를 들뜨게 했다.

“서울 돌아가 꼭 계획을 세워 다시 오죠. 그 때 이 교수님이 반드시 동행해 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죠.”
“여보, 우리 내년 여름에 옵시다. 태영이 부부와 같이 오면 어떨까?”
“서울 가면 딴소리 할 거 아니에요?”
“아냐, 정말 옵시다.”
“꼭 오세요. 정말 잊지 못할 일생일대의 추억이 될 겁니다.”

  이렇게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내년 바이칼 일주 크루즈 여행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호텔로 돌아왔다. 죽이 맞은 우리들은 같이 호텔 방으로 올라와 이교수와 나는 미니바에서 보드카를, 아내와 민정이는 포도주를 모두 꺼내 마시며 새벽 1시가 되어서야 헤어졌다.

  이근우 교수와 민정이가 돌아간 후 우리는 다시 쓸 수 있게 된(사실은 못쓰게 된 적이 없었다는! 나는 아직도 믿을 수 없지만) 노트북을 꺼내 차이코브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켜고 서울서 준비해간 가루 원두커피를 타서 마셨다. 러시아 민요의 멜로디를 삽입했다는 애절한 선율을 들으며 이르쿠츠크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내년에 꼭 다시 오자고 다짐하며.

  다음 날 아침, 그러니까 6월 4일 아침 우리는 ‘트루베츠코이’의 집으로 향했다. 트루베츠코이는 이른바 ‘데키브리스트’의 중심인물이었는데 이곳은 그가 살던 집이란다. 여기서 민정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모스크바까지 왔다가 패주하는 나폴레옹군을 뒤쫓아 프랑스까지 진격했던 러시아의 젊은 귀족 장교들은 서구 유럽의 발달된 경제 문화를 목격하고 충격과 감동에 휩싸였다고 해요. 그들은 러시아로 돌아와 러시아의 정치체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입헌 군주제와 농노 해방 등을 목표로 한 군사 쿠테타를 계획합니다. 마침 1825년 12월 니콜라이 1세의 즉위식에서 거사를 하기로 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거사가 실행되기 전 현장에서 체포되고 맙니다. 주모자 중 5명은 교수형에 처해지고 나머지는 시베리아 탄광에서의 중노동형이 내려집니다. 12월에 거사하기로 했으므로 러시아어로 12월을 뜻하는 ‘데카브리’에 사람을 지칭하는 접미사 ‘이스트’가 붙어 이들을 ‘데카브리스트’라고 부르지요.”

민정이는 150년 전에 아주 정감 있게 나무로 지어진 트루베츠코이의 집 앞에서 매우 진지한 얼굴로 손짓을 해가며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트루베츠코이 공작을 포함한 데카브리스트들은 무기형을 받아 1826년부터 13년간 이곳 탄광에서 일하고 그 후 다시 20년간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합니다. 이곳은 모스크바에서 4,500킬로미터나 떨어졌으므로 150년 전 이곳은 그야말로 야만의 오지였으니 혹독한 형별이었습니다. 젊은 귀족 청년 장교들이었음으로 당연히 젊고 아름다운 아내들이 있었고, 무기한의 생이별을 의미하는 이 형벌은 이들에게 육체적 고통 이상의 고통이었습니다.”
“니콜라이 1세는 이들의 부인들에게 남편을 버릴 것인가, 시베리아 유형을 같이 떠날 것인가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남편을 버리면 귀족의 지위를 유지하여 주고 뻬떼스부르크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보장하겠다고 유혹하였습니다.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민정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글쎄 영하 30도가 넘는 혹독한 추위와 야만의 토지로 탄광에서 중노동을 해야 하는 남편을 따라 가는 여자가 있었을까?’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아내를 쳐다보자 무슨 뜻인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예카테리나의 초상과 서신, 그녀가 쓰던 각종 집기 등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그 앞에서 민정이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트루베츠코이 공작의 아내, ‘예카테리나’는 프랑스 귀족이며 장군의 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녀가 행여 남편을 따라 간다고 할까 걱정이 되어 프랑스로 불러 들였습니다. 그리고 남편 생각과 외로움을 잊게 하려고 매일 같이 화려한 파티를 열어 주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예카테리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자기의 결심을 말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파리에서의 화려한 생활 속에 남편을 잊어가는 것으로 생각하였던 부모들은 남편을 따라가는 것을 포기한다는 결심이기를 간절히 기대하였겠지요. 그러나 예카테리나는 ‘저는 남편을 포기할 수 없어요. 죄송합니다만 곧 시베리아로 떠나겠습니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녀에게는 3살 난 아들이 있었으므로 그녀의 어머니는 ‘이 가엾은 어린 것은 어쩌려고 하느냐’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그 때 예카테리나는 ‘이 아이에게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곁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이에게는 내가 가지 않으면 곁에 아무도 없어요. 저는 가야 돼요.’ 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나는 민정이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들으며, 특히 ‘내가 가지 않으면 그이에게는 아무도 없어요’ 라는 구절에 이르러 그 진한 부부애에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 나는 속으로 ‘그래, 부부를 반려자라 했지.’라고 읊조리는 사이 다음 이야기가 이어졌다.

“예카테리나는 아버지가 준비해준 마차와 몸종 그리고 하인 몇 명을 데리고 시베리아로 출발하였습니다. 3살 난 아들을 뒤에 두고 떠나는 엄마의 마음이 오죽했을까요.” 
“길도 험하고 가도 가도 인적이 없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일년 넘는 시간을 낮에는 걷고 밤에는 노숙하기도 하고 때로는 야만인들의 집에 의탁하며 보냈습니다. 그 사이 혹독한 생활에 견디지 못한 하인들이 병들어 죽거나 도망가고 말도 병들어 죽었습니다. 마차를 버리고 걸어서 이르쿠츠크에 도착했을 때는 충성스런 몸종 한명만이 그녀 곁에 있었습니다.”

믿어도 될까? 민정이의 소설은 아닌가? 모택동의 대장정이 5,000킬로미터라고 했지, 아마.

“목숨을 건 대 장정 끝에 남편이 중노동을 하는 탄광의 울타리 밖에까지는 왔으나 이곳에 머무르는 것은 시장의 체류 허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시장은 황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 두려워 그녀가 이곳에 머무는 것을 원치 않았지요. 그래서 시장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그녀를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예카테리나는 매일 같이 시장을 찾아가 만나주기를 간청하였고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녀의 열정에 감동된 시장이 드디어 그녀에게 영주를 허가하였습니다. 탄광 바로 밖에 집을 짓고 남편이 혹시 외출을 허가 받아 나오기를 가다리며 13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드디어 남편이 중노동을 마치고 나오자 얼마 안 되어 그녀는 병들어 죽었다니까 정작 남편과 같이 한 시간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그 사이 파리에 남겨 두었던 어린 아들은 전염병에 걸려 엄마를 그리며 죽었다고 하니 모두가 너무 가엾지요.”

  나는 어느새 눈가가 젖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황급히 고개를 돌려 딴 곳을 응시하였다. 우리가 투르베츠코이의 집을 나섰을 때 나는 아내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당신이라면 물론 남편을 버리고 파리에 남았겠지?”

그러자 아내는 진지하게 응수한다.

“글쎄,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난 못할 것 같애.”
 
이 답답한 여자야! 빈 말이라도 ‘나도 물론 남편을 따라가지“라고 말하면 어디 덧납니까?

  나는 감동과 실망(?)을 안고 즈나멘스키 수도원으로 향했다. 즈나멘스키 수도원은 황금색 돔이 설치된 아름다운 곳이었다. 마침 개보수 작업이 진행 중인데 북한 노동자들이 와서 일한다고 했다. 벽에 페인트칠을 하면서 우리 일행을 힐끔 쳐다보고 다시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 매우 초라하고 측은해 보였으나 곧 머리 속에서 지워 버렸다. 여기서 볼 것은 예카테리나의 무덤이었다. 우리는 그녀의 무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르쿠츠크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나는 노트북을 고쳐주었다는(엄밀히 말하면 고치지 않았지만) 학생과 MP3에 음악을 녹음해준 학생 그리고 다른 유학생들을 모두 초대하여 점심을 같이 먹었다. 물론 이교수도 나와서 우리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컴퓨터 도사라는 학생은 키가 아주 큰데 매우 수줍어 하고 음악을 좋아한다는 학생은 별 말이 없었다. 온지 얼마 안 된다는 예쁘장한 여학생 하나가 민정이의 대를 잊는단다. 이 여자 아이도 조선 여자의 기개를 타고나 여기까지 왔겠지.

  슈퍼에 들려 먹을 것을 한 아름 챙겨 기차역으로 향했다. 민정이와 아내는 석별을 정말 아쉬워했고 기차역 홈에서 한참이나 그저 그렇게 서 있었다. 서울에 오면 꼭 연락을 하라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