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빛 하늘에 물들다(13)

GSnJ 연구원 박혜진

 비가 부슬부슬 내려 머리부터 어깨 위를 가볍게 적신다. 집합장소에 늦을까 걱정이 되어 헐레벌떡 뛰었는데 다행히도 막 오후의 짧은 휴식시간을 여유롭게 즐기신 듯한 얼굴로 이제야 천천히 카페를 나오고 계셨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앞에 계시던 수협중앙회의 박웅 과장님이 내가 또 다른 곳에 다녀온 걸 아시고는 한 마디. “여기서 혜진씨가 제일 용감한 거 같네요” 라며 그 특유의 선한 웃음을 지으신다. 마지막으로 숨을 한 번 더 고르며 “헤～그런가요?” 라고 나도 같이 웃었다.

어둠 속 궁전과 정원

 자유분방 가이드 아저씨는 매우 빠른 발걸음으로 다음 목적지로 우리를 안내한다. 같은 속도로 따라간다면 설명을 조금이라도 건질 수 있고, 그렇지 못하다면 찍어 놓은 사진으로 그냥 오스트리아에 왔다는 흔적만 남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나는 후자에 속했기 때문에 설명 을 제대로 듣는 건 거의 포기한 채 설렁설렁 걸으며 다음 목적지가 어떤 곳일지 궁금해 하기로 했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과 함께 항상 비교대상이 되는 쉔부른 궁전.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별장으로 쓰였던 곳이며 성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프랑스와 힘을 겨루던 때라 쉔부른 궁전을 지금의 것보다 더 화려하고 크게 지으려는 게 중요한 목적이었다고 한다. 건물 안으로 들어설 때는 늦은 오후였지만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1400개가 넘는 방들 중에 약 40여개만 관람을 허용한단다(만약 더 많은 방을 개방했더라면 하루종일 돌아도 모자랐을 거다). 내부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어서(그렇다고는 해도 사진이 찍혀 돌아다니는 건 막을 수 없는 듯 한데...) 내가 직접 남겨둔 사진은 없지만 방을 하나하나 지나치면서 그 화려함을 눈 속에 새겨 넣었다.

궁전을 나와 정원으로 향했다. 이 ‘정원’은 소일거리 삼아 화분 몇 개 갈아 심어줄 수 있는 ‘정원’이 아니라 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고 반듯반듯하게 잘 정돈된 정원이었다. (적어도 안내도에서 본 정원은 그래야 했다). 하지만 이미 주변은 궁전에서 나오는 불빛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검고 짙은 어둠 속이어서 지금은 여기가 정원이라는 것만 간신히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오늘의 저녁메뉴는 신나는 음악입니다. 

 궁전을 나와 식당으로 출발했다. 오늘은 오스트리아 음식. 입구부터 예쁘게 꾸며진 식당은 전체적으로 붉은 기가  감도는 어두운 조명을 사용해서 그런지 분위기가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하나 특이한 것은 입구쪽에 붙어있는 많은 사진들..일단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먼저 준비된 와인으로 목을 축인다. 그러고 보니 옆 테이블에선 아코디언 소리와 박수소리가 어우러져 흥겹게 달궈진 공기가 우리가 있는 쪽으로 조금씩 흘러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소세지와 돼지고기가 곁들여진 이름은 모르는 음식이지만 아무튼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맛난 음식을 씹으며 대화가 오고 가는 가운데 아코디언 소리가 점점 우리쪽으로 가까워 진다. 연주하는 아저씨가 맛깔나게 한 두곡 연주하더니 다음은 언제 들어도 익숙한 한국가요가... 비행기로 장장 12시간을 날아온 먼 곳인데도 한국가요를 생음악으로 들을 수 있게 되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그렇게 박수장단에다 꿀꺽꿀꺽 넘긴 와인과 함께 왁자지껄 지나간 저녁식사 시간은 연수 막바지가 되어 켜켜이 쌓인 피로를 조금은 씻어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