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빛 하늘에 물들다(12)

GSnJ 연구원 박혜진

국경을 넘어 풍차바람을 타고

  “여행은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리는 서로 연결된 곳의 통합과 분리를 동시에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아침부터 김용운 부장님이 선사하신 이 멋드러진 문구들을 되새기며 우리는 프라하를 떠나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는 중이다. 이번엔 비행기도 철도도 아닌 버스로 국경을 넘는 특별한 체험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약 4시간 정도가 걸릴 거라고 해서 지루한 이동을 생각했지만 출발한 지 20분 남짓 지나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럴 새도 없게 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구름 동동 떠 있는 예쁜 하늘이 역시나 그냥 잠만 자게 내버려 두지 않으니까 말이다. 속도를 서서히 늦추는 버스는 오전 11시 35분 체코국경을 통과, 50미터 정도 더 가자 바로 오스트리아 국경이란다. 특별한 검문 없이 통과해버리니 ‘버스로 국경통과’라는 나의 특별한 체험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그러나 기대했던 국경통과의 아쉬움도 잠시. 계속 이어지는 하늘과 그 푸른 하늘색을 유지하기 위해 하늘에서 물감을 잘 섞고 있는 듯한 거대한 풍차 날개가 어우러진 모습은 장관이었다. 스웨덴은 나무를 잘라내고 평야를 만들어 풍차를 설치하는 것조차 환경파괴라고 생각하여 풍력발전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풍력발전을 국가지원사업으로 하고 있는 덴마크와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얘기를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수빈마마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 오스트리아는 사정이 다른 것 같다. 국경을 지나 빈으로 가고 있는 도중에는 오로지 경사가 완만한 평야지대만 있었으니까. 이 거대한 풍차는 개인사업자도 설치가 가능해서 생산한 전기를 국가를 상대로 판매하기도 한단다. 버스 여행이 점점 지루해질 무렵 풍차들의 행렬이 끝나고 건물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버스에서 내리려는 데 로밍핸드폰이 울린다. “여보세요? 아 박사님!” 프라하에 있는 동안 특별히 쓸 일이 없어 인터넷 사용신청을 안했었는데 그 사이 보내신 메일이 수신확인이 안되어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여행은 어떤지 안부를 물으시는 것에서부터 홈페이지와 관련된 몇 가지 수정사항을 다시 알려주신다. 멀리서도 박사님이 옆에 계신 것처럼 통화음질이 좋다. 그러고 보니 며칠 후면 뉴스레터도 발송해야 하는데 함께 실을 여행기가 걱정이다. 글을 써본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여행을 시작하면서 비행기에서부터 메모는 꽤나 해두었지만 아직도 어떤 전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뭐 일단은 굶주린 배부터 채우고 다시 생각하자구!

자유분방 아저씨

  버스 밖으로 나오자 햇빛은 강한 데 부슬부슬 비가 오고 있었다. 날씨도 꽤나 쌀쌀한 데다 바람도 많이 불어 나는 옷깃을 바짝 여며야 했다. 점심은 일식과 한식을 같이 파는 집에서 한식으로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생각한건데 유럽에 와서 다녀 본 한식집에서는 전부 숙주나물 반찬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는 것이다. 숙주나물이 구하기 쉬운 재료인걸까?? 식사가 끝나고 가이드 아저씨와 함께 시내관광을 나섰다. 참. 아직 가이드 아저씨를 소개하지 않았네. 오스트리아 가이드 아저씨는 나의 오스트리아에 대한 기억을 조금은 흐릿하게 만들어 주시기도 한 분이며, 대단히 동네 아주머니 같은 아저씨였다. 보통은 가이드가 함께 온 일행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하는 걸로 아는 데 이 분은 그런 상식을 과감히 깨는 데 도움을 주셨다.^^  아무튼 이 자유분방하신 가이드 아저씨와 처음 맞닥트린 장소는 모차르트가 생전에 가장 오래 지냈다는(그래봤자 3년이라고 한다)집이었다. 설명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우산이 없던 나는 냉큼 옆에 계시던 정지용 부장님 우산 속으로 돌진.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신세를 졌다.^^:

관광명소 성 슈테판 성당

  잠시 후 우리가 들어간 곳은 모차르트가 결혼식과 장례식을 치뤘다는 사실로 유명하기도 한 성 슈테판 성당. 12세기에 지어진 이 성당은 세계에서 3번째로 높다는 137미터 첨탑을 가지고 있고 화재나 전쟁으로 인한 보수가 반복되고 있어 우리가 갔을 때도 일부분은 보수 중이었다. 성당이 워낙 커서 그냥 서서는 카메라 앵글에 잡히지도 않는다. 바닥에 바짝 엎드리는 수고까지 해야 좀 잡힐 듯. 성당 안에는 사람들이 꽤 많다. 따로 설명을 듣지는 않고 각자 돌아보기로 했다. 나는 가까이 계시던 김한얼 교수님과 예배당 의자에 잠깐 앉았다. 믿음에 대해서 먼저 얘기를 꺼냈는데 교수님은 교회를 다니신다고 했다. (음... 나도 고무줄 신자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누가 물어보면 성당에 나간다고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곤 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냥 다니던 성당인데 어느 순간 내가 믿음이 있어서 나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서는 쉽게 성당에 가지 않게 된다는 얘기를 했더니 교수님은 본인도 처음엔 신을 믿지 않았지만 본인이 직접 체험한 부분들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게 되더라는 말씀을 하신다. 나는 끄덕끄덕 했다. 이해하는 건 어렵지만 그 마음은 알 것 같다라는 생각을 담은 끄덕임이었다. 얘기를 주고 받다보니 시간이 많이 흐른 느낌이다. 어? 교수님 시간이 얼마나 된 거죠? 주변을 둘러보니 일행분들이 안 보이는 것 같다. 서둘러서 입구 쪽으로 가니까 성물판매소에 구경하시는 분들이 보여 일단 안심. 휴우... 나도 이것저것 둘러봤다. 갖고 싶은 게 많았지만 또 늦어질까봐 묵주만 사고 부랴부랴 서둘러 나간다.

아늑한 성 슈테판 성당

  다음은 커피가 맛있다는 카페에 들어갔다. 조그만 테이블뿐이어서 우리 일행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없는 것 같아 그냥 나오려다가 군데군데 자리가 눈에 띄어 카페에 계실 분들은 자리를 잡고, 나머지 분들은 밖으로 나오셨다. 약 40분의 자유 시간. 나는 방금 들렀던 성당이 다시 가보고 싶었다. 프라하에서 봤던 성 비트 성당은 규모도 엄청나게 크고 대부분 관광객들로 가득해서 그냥 관광지라는 느낌이 더 컸는데, 성 슈테판 성당도 유명관광지 리스트에서 빠지지는 않지만 왠지 더 아늑한 느낌이어서 잠깐 조용히 앉아 있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아까보다 천천히 보기로 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왼편 벽 쪽에 수녀복을 입은 여자분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는데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초를 하나 사서 불을 켰다. 초를 꽂아 두는 곳이 있어서 정성스레 놓고 의자에 앉았다. 긴장이 풀어지면서 몸이 편안해진다. 나는 두 손을 깍지 껴 가지런히 모았다. 유럽 와서의 여정들이 머릿속을 훑고 간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그 누군가에게 내 바램을 간절히 전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이루어지도록 돕는다'는 연금술사에서의 내용처럼 아주 간절히 기도했다. 그 상태로 잠깐 정지한 채 사진 속 수녀님을 쳐다보았다. '제 기도를 누군가는 들었겠지요??'

  음악의 도시답게 거리에는 음악회나 공연 안내 포스터나 안내문들이 가득하다. 집합장소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걸 발견하고는 가까이 가봤더니 젊은 아저씨가 줄인형으로 인형극을 하고 있었다. 줄이 달린 줄 모를 정도로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인형이 신기하고 재밌다. 피아노 건반 치는 손놀림도 예사롭지 않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좋을텐데... ^^;; 또 다시 시간에 쫓겨 줄달린 인형보다 더 자연스러운 자세로 약속장소인 아까의 그 카페 앞으로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