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nJ 연구원 박혜진

 뭔가 불편하다. 자꾸 뒤척이게 되어 애써 눈을 떴다. 분명 잠깐 누웠던 거 같은데, 윤경부장님과 몇 마디 나누다가 아까 호텔에 도착한 차림새 그대로 잠이 들었나보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를 넘어가고 있다. 여전히 잠에 취한 채 멍한 눈으로 휘휘 둘러보니 옆 침대의 부장님은 깊이 잠든 듯 했다.

 연수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체력이 조금씩 고갈되어 가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 처음엔 시차적응에 실패하고, 그 다음엔 새벽시간을 일하는 데 쓰고 하다 보니 수면리듬이 깨진 탓이리라. 그래도 하루하루가 새롭고 기대되기 때문일까. 당시에는 피곤함에 신경쓸만한 틈도 없다고 느꼈으니 말이다. 프라하의 아침을 기다리며 행여 잘 오던 잠이 깰까봐 정신이 들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씻고 얼른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침의 프라하

 로밍해간 핸드폰 알람이 징징거리는 걸 여러 번 무시해 주고서야 눈을 떴다. 가볍게 차려 입고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으니 단원분들도 한분 두 분 식사하러 가시는 모양이다. 이제는 얼굴만 봐도 전 날 어디선가 한잔 들이키셨는지, 잠을 잘 주무셨는지 조금은 감이 온다. ^^ 호텔식당의 커다란 창밖으로 보이는 약간은 낮게 가라앉은 날씨를 배경삼아 아침을 먹고 윤경부장님과 산책길에 나섰다. 프라하에는 밤에 도착했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아침 모습은 이전에 갔던 네덜란드나 스웨덴과는 사뭇 달랐다. 낡고 오래된 느낌, 그게 약간은 촌스러운 듯 하면서도 운치가 느껴진다(당시 내 안구에는 ‘유럽에서 보는 것은 무엇이든 예쁘게 보기 필터’가 끼워져 있었던 것 같다@_@). 조금 이른 시간인데다가 주말이어서 그런지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내 손에는 언제나처럼 지도 한 장이 덜렁덜렁 쥐어져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발길 닿는 대로(대신 가까운 거리를) 걸었다.

붉은 빛 지붕 위에서

 머릿속을 시원한 바람으로 채우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의 오늘 첫 번째 목적지는 프라하성이다. 버스로 이동해 프라하성으로 가는 입구 근처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입구를 지나 몇 개의 건물도 지나치자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장소가 나타났다.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약속이나 한 듯 많은 집과 건물들이 붉은 빛(오히려 주황색에 가까운 듯 하고 그 색들은 약간씩 미묘하게 다르다)의 지붕들을 얹고 있다는 것. 윤경부장님의 프라하 입성 기념사진을 얼른 찍어드리고, 발을 아프게 하지만 이걸 어떻게 다 깔았을까 매번 궁금해 하던 돌바닥으로 계속해서 이어진 길들을 가이드를 따라 걷고 걸었다. 가는 길에 한 젊은 아가씨가 가게 밖에서 뭔가를 팔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우리가 누구더냐. 당연히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이럴 땐 행동이 생각 외로 재빨라진다.) 아리따운 아가씨가 팔던 것은 Hot Wine이었다. 와인을 데워서도 마신다는 건 처음 겪는 일이라 신기해하고 있는 동안 현대자동차에 근무하시는 이종일 부장님이 지갑을 쓰윽 꺼내시길래 옆에서 마시고 싶다는 눈빛을 보내드렸다. 이종일 부장님의 근사한 한턱으로 몇몇 다른 분들도 뜨거운 와인맛을 보실 수 있었고 나도 종이컵을 입에 가져가며 유난히 바람이 많았던 이 날의 추위를 녹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으나... 결국은 한 모금만 꿀떡 넘기고 계속 들고 다녀야만 했다. ㅜㅜ

‘프라하성 오케스트라’를 소개합니다.

 프라하성 입구와 길게 늘어선 줄이 점점 시야에 들어온다. 프라하성 입구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굉장히 유명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세 아저씨들의 신나는 연주소리가 들려온다. 플루트, 콘트라베이스, 아코디언으로 이루어진 ‘프라하성 오케스트라’는 악기의 구성도 독특하다. 가운데 있는 대장처럼 보이는 멋드러진 콧수염의 플루트 아저씨 앞에는 아직 많이 팔리지 않은 씨디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아저씨들은 연수단원분들에 둘러쌓여 더욱 신나는 연주를 해주신다. 라이브 연주의 매력에 취한 탓인지 절로 지갑에 손이 가고, 씨디에 손이 간다. 씨디 안쪽에 대장 아저씨의 싸인까지 받고나니 연예인 싸인이라도 받은 듯 기분이 확 좋아졌다.^^  그런데..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씨디를 들었을 땐 사실 조금은 힘이 빠졌었다. 동그란 씨디 속에 갇힌 음들은 듣기엔 그냥 좋았지만, (나의 보통귀로는 그 연주가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알지는 못하더라도)프라하성 앞에서 자유롭게 연주하던 오케스트라 아저씨들의 신나는 몸짓과 즐거운 악기소리를 절반도 표현해 내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음악보다는 그때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가져올 수가 없기 때문이겠지...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눈을 마주하고 귀를 열면 진심이 전해진다고 나는 믿는다. 음악도 마찬가지.  들려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눈과 귀. 그것들의 직렬연결이 음표와 감정의 전달에 있어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제 어느 정도 성 밖 공기에 익숙해진 것 같으니 자~자~다 같이 프라하성 안으로 입장하시겠습니다!

프라하성과 황금소로

 프라하성은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기도 하고 길이가 570m, 너비가 128m의 굉장히 큰 규모의 성이다. 성 안에는 궁전과, 3개의 교회건물과 수도원 등이 있고 1918년부터는 대통령 관저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짧은 시간에 비해 이곳저곳 돌아다녀서인지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중 가장 괜찮은 건물은 내부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화려하고 예뻤던 프라하성 중심부에 위치한 성 비트 성당이다. 1344년 짓기 시작해 1929년 공사를 마쳤다고 하니 짓는 기간만 600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휴일이라 그런지 우리 말고도 관광객으로 가득한 성당.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마지막 코스로 꼭대기와 통해 있는 작은 통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돌로 된 계단의 폭은 한사람도 불편하게 설만큼 좁고 꽤 난이도 있는 경사인데다가 계속 뱅글뱅글 도는 형태로 난관도 없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이라도 있을라치면 비켜주다가 밑으로 한 없이 떨어질 것 같아 오르는 내내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앞사람 꽁무니만 쳐다보고 언제 계단이 끝나나 지쳐갈 무렵-사실 이미 지쳐있을 즈음-드디어 빛이 보인다. 성당의 꼭대기는 좁은 통로로 한 바퀴 돌며 시내를 전부 내려다 볼 수 있는 형태여서 성당 바로 아래 깨알만한 사람들도 보이고 다른 방향에서는 저 멀리 프라하 시내를 가로지르는 불타바강과 함께 아까도 봤던 붉은 빛 지붕의 건물들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다. 프라하 전체가 붉은 지붕으로 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아침 산책길에 느꼈던 프라하만의 그 다른 느낌은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지도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프라하만의 분위기는 서울에 있는 지금 사진으로만 보아도 여전히 뭉클한 뭔가가 있으니까 말이다.

 다음은 연금술사들이 모여 살았다던 ‘황금소로’로 이동. 황금소로에는 중세에 연금술사, 황금 세공사와 성의 일꾼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조그마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그 중 22번지 집은 작가 카프카가 약 반년동안 집필을 했던 곳이어서 더 유명하다고 한다. 단체로 함께 다니는 여행이고 일정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늘 자유시간이 부족한 게 아쉬웠지만 황금소로에서는 그 아쉬움이 더했던 것 같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소품들이 한가득이었지만 선물용으로 하나만 사들고 이미 보이지도 않는 일행을 따라잡기 위해 윤경부장님과 나는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