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빛 하늘에 물들다(8)

GSnJ 연구원 박혜진 

황금의 방을 지나 바사호를 타고 구 시가지로

  이번엔 무리 없이 짐 싸는 걸 마치고 인터넷 요금 계산에 체크아웃까지 하고도 시간이 조금 남는 여유를 보였다. (이제 아침시간이 두렵지 않다구^^V) 오늘은 프라하로 가는 날. 아침 일정의 시작은 어제 들었던 대로 시청사에서!

 시청사는 1923년에 완공된 건물인데 지금도 업무를 보고 있는 곳이어서 크게 떠들면 안 된다는 주의를 받고 견학을 시작했다. 분홍색의 동그란 입장용 스티커를 잘 보이게 붙이고 안내에 따라 들어가 맨 처음 맞이한 장소는 층 전체가 트여 있는 블루룸이라는 이름의 공간이다. 지금은 비나 먼지 때문에 천장을 덮었지만 처음에는 건물에 천장이 없어서 파란 하늘이 그대로 보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했다. 벽을 따라 놓여진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시의회 회의실을 지나쳐 드디어 이 시청사를 유명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 바로 *노벨상 수상자들의 만찬이 열린다는 황금의 방으로 들어섰다(방이라기 보다는 커다란 홀이 맞을 것 같다).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느라 좀 늦게 도착해서는 어디 황금덩어리라도 있는건가 하고 두리번 거리는데 눈에 들어오는 거라고는 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자이크로 장식된 벽 뿐이었다. 그것도 멀리서 보고 있으면 그냥 그림같기도 했다. 그런데...가이드의 설명이 끝나고 잽싸게 벽쪽으로 가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서 살펴보니 이 커다란 홀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정말 엄지손톱만한 금조각들이었던 것이다. 이걸 하나하나 다 직접 붙였다니...오 놀랍군, 놀라워! 튼튼하게 잘 붙여졌는지 살짝 만져만 보고(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다!!) 시청사를 나와 바로 바사박물관으로 향했다.

* 해마다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은 신시가지에 있는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단, 평화상 시상식만은 같은 시각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열린다.

 바사박물관에는 1628년 출항하자마자 돌풍을 만나 침몰한 전함 바사(VASA)호가 전시되어 있다(바사는 덴마크와 싸워 스웨덴을 독립시킨 사람으로 근대 스웨덴의 아버지라 불린다고 한다). 17세기 만든 배 치고는 길이가 69미터에 무게가 1200톤이나 나가는 규모에 놀랍기도 하지만 1961년 인양되기 전까지 333년 동안이나 바다 속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외관엔 거의 변함이 없다고 하는 게 더 인상적이었다. 쉽게 생각하기에 바닷물 속에 있었으니 당연히 나무가 썩지 않았을까 싶은데, 진흙 속에 깊이 잠겨 있어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침몰한 배가 어떻게 여기 전시되어 있는 고 하니, 몇 년에 걸친 인양작업 후에 염분을 머금은 나무는 그대로 말리면 쪼그라드는 성질 탓에 또 몇십년에 걸친 화학처리를 하는 등 대단한 정성을 들여 복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출항하자마자 침몰해 버려 정작 위엄을 내새워야 할 곳이 바다 위가 아닌 전시장 안이라는 게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게 바사호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박물관의 어두컴컴한 조명에 눈이 익숙해질 때 쯤 밖을 나오자마자 나를 사로잡는 건 마구 빠져들고 싶게 하는 저 파아란 하늘. 도대체 저런 색깔은 어떻게 낼 수 있는 걸까?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장 그리웠던 건 견학장소나, 유명한 관광지보다 고개만 들면(물론 맑은 날에 한해서지만...) 보이던 머리 위로 드리워져 있는 저 파란하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리운 곳: 감라스탄지구

 스웨덴에서의 최종 관광코스는 감라스탄 지구라고 하는 구 시가지였다. 버스에서 내려 노벨박물관을 등지고 모이자 수빈씨가 설명을 시작했다. 뒤로 보이는 노벨박물관에는 역대 수상자들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고 했다. 관광코스에 포함시킬 만한 곳은 아닌가보다. 이 정도만 얘기하고 다른 설명을 이어간다.

사실 이 이후의 설명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아주 오래 되었다는 예쁜 색깔의 건물과 그 옆으로 난 작은 길에 이미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의 또박또박 발음 좋은 설명이 끝나고 다 같이 내가 마음을 주고 있는 좁은 사잇길로 들어섰다. 돌로 만들어진 바닥과 좁은 골목.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라고 한다. 짧긴 하지만 자유시간이 주어지고, 나는 윤경부장님과 한 방향으로 쭈욱 걸어갔다. 근데 이상하다? 가게나 거리의 구조가 꽤나 낯이 익은 것 같은데.. 여길 와본 적이 있던가? 호오～그러고 보니 여기는 어젯밤에 혼자 보기 아까웠던 그 멋진 거리잖아? 부장님! 부장님! 여기 어제 와본 곳이에요. 아아..어제 갔던 곳이 구 시가지였네요. 기억나세요? 부장님은 갸우뚱 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어제 밤 이미 영화 같은 모습을 먼저 봐버렸기 때문에 낮의 모습하고 바로 연결선이 그어지지 않은 탓이었다. 걸어가며 찬찬히 살펴보니까 부장님도 기억이 나시나보다. 주로 아기자기한 소품들이나 미술작품들을 파는 가게가 많았는데, 나는 어제 시간이 늦어 문을 닫았던 가게들을 더 보게 된 것으로 만족했다. ‘우리만 보긴 너무 아까운 곳이에요’ 였던 마음이 어느 새 ‘우리만 보게 된 아주 특별한 곳이었네요’ 로 변해가고 있었다. 파란 하늘 다음으로 그리운 곳. 나의 감라스탄 지구.

프라하로!

 프라하로 가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붙이려고 줄을 섰는데 사람이 많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도통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원인은 너무나 느긋한 공항직원 아주머니. 스티커 붙이는 기계가 잠깐 고장난 듯 한데 그걸 고치는 것 마저도 느긋하다. 본인은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 속도라면 우리는 늦을지도 모른다구요!!

다행히도 직원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비행기 탈 시간은 허락해 주었고, 가이드 전수빈씨와의 마지막 포옹을 끝으로 스톡홀름과는 작별을 했다. 수하물 검사도중에 호텔에서 챙겨 둔 미니잼 대여섯개를 위험물질일지도 모른다며 반입이 안 된다는 걸  필사적으로 막아보려다가 결국 빼앗겨 버린 일 말고는 여권도 잘 챙겼고 비행기에도 조용히 탑승했다. 이제 프라하다!

나는야, 프라하의 방랑자

 프라하는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이게 어디 있는 도시인지는 잘 몰랐던 거 같다. 체코라고 하니 오히려 더 생소하다. 게다가 드라마도 잘 안 보는 탓에 방영된 지는 좀 됐지만 ‘프라하의 연인’이라는 드라마에 나왔었다는 멋진 장소들도 나는 알 턱이 없다. 무슨 다리도 유명하다고 하고 프라하의 야경이 그렇게 끝내준다는 데 말이다.  이런 보잘 것 없는 정보만으로 일단은 프라하에 도착했다.

커다란 옥외간판에 보이는 LG초콜릿폰 광고에 호들갑을 한 번 떨어주고 드륵드륵 짐가방을 끌며 이번엔 어떤 가이드일까 궁금해했다. 프라하의 가이드는 ‘젊고 점잖으며 결혼해서 체코에서 살고 있는’ 유학생이었다. 전수빈씨의 엄청난 대사량에 익숙해지지 못해있던 분들의 귀는 한 층 낮은 톤의 조용조용한 목소리를 반기는 듯 싶었다(단지 나 혼자만의 추측이다^^;) 가이드와 함께 다들 짐을 찾아 밖으로 나와 있는데 오늘따라 단장님이 많이 늦어지신다. 짐이 안나와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데 한참을 지나도 깜깜무소식이어서 확인해 보니 아마도 짐이 다른 곳으로 간 것 같아서 공항 측에서 호텔로 보내주겠다고 했단다. 손에 아무것도 없는 단장님을 보며 모두들 걱정하고 있는데 단장님은 오히려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아무 걱정 말라고 하신다. 짐이 금방 올거라고. 그 여유로운 웃음에 정말 아무 걱정 없어져 버린 걸 단장님은 혹시 아실까? ^^;

 유난히 덜컹거리던 길을 뚫고 중식당에 들려 저녁을 해치운 후 우리는 들어가는 입구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무지무지 큰 파란색 SAMSUNG 네온사인이 보이는 ‘디플로마’ 라는 호텔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바로 올라간 방은 아늑한 편이었고, 짐 정리가 어느 정도 되자 윤경부장님이 벽 한쪽의 커튼을 연다. 커튼 뒤의 커다란 창이 열리자 방 안의 따뜻한 기운에 익숙해지려던 터라 순간 차가운 바람에 몸을 움츠릴 뻔 했지만 그것도 잠시. 살갗을 휘감는 바람의 상쾌함은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의 피로를 날려버린다. 윤경 부장님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혜진씨, 내일 아침 일찍 주변 산책이나 하러 가볼까?”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네, 그래요^^”

 왠지 프라하에 있는 동안은 마음껏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고 싶어지는, 그런 밤이었다. 그래! 프라하의 배가본드가 되보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