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빛 하늘에 물들다(6)

GSnJ 연구원 박혜진 

다이나믹한 수빈마마

 유럽연수 동안 총 5개의 국가를 거쳐 오는데, 가는 나라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현지 가이드가 모든 일정을 책임지게 된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유럽에 도착했지만, 그 다음 나라로 이동할 때부터는 어떤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해 보는 것도 낯선 외국땅에 첫 발을 내딛는 것만큼이나 설레면서 재미있는 일이었다. 네덜란드에서 곧고 올바른 청년의 나긋나긋한 설명에 익숙해져 있던 연수단에게 스톡홀름 현지 가이드 전수빈씨와의 만남은, -내가 어렸을 때 견학 갔던 포항제철소에서 본- 용광로보다도 더 뜨거울지도 모를 열정과 에너지가 파바박 튀어 오르는 시간들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었다.
 전수빈씨는 자신을 재미교포라 소개하고 스웨덴에 온 지는 7년이 됐다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교포라는 사실이 안 믿겨질 정도로 우리말을 잘했다. 그리고 전수빈씨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들은 높은 음의 음표들만 빽빽하게 들어앉은 숨표 하나 없는 악보와도 같았다. 어쩜 그렇게 많은 단어를 그 짧은 시간 안에 전달할 수 있는지... 가끔씩은 너무 스스럼없는 행동에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고, 안내가 필요한 곳에선 영어와 스웨덴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성실하게 설명해주던 프로페셔널한 모습까지...그야말로 다이나믹한 사람이라고 해야할까.. 천성이 밝고 활기차서 나에게까지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까지 좋은 에너지를 전하는 사람. 많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게 함께 힘이 솟기도 했다. 그런 다양한 모습에 반하셨는지 많은 분들이(호감을 갖지 못하신 분들도 계실지 모르니..^^:) 수빈마마라는 애칭으로 스웨덴에 있는 내내 극진히 모셨다는 전설 아닌 사실이 지금까지도 얘깃거리로 남아 있다.

스톡홀름의 첫째날 밤

 유럽에 온 지 3일째. 오늘도 모든 일과가 끝나고 호텔에 도착. 가방을 끌며 회전문 통과쯤이야 이제 식은 죽 먹기!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가 짐을 풀고, 이 방안에서 앞으로 나의 생필품이 되어줄 녀석들은 누가 될지 여기 저기 진지하게 살피고 있는데, 분위기가 저녁외출하자고 한 분 두 분 모이시나보다. 우리도 시내구경에 동참하기로 했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다녀와서 하면 되겠지. 윤경부장님과 호텔 밖으로 나가니 대여섯 분이 나와 계셨고 이번 외출은 전수빈씨도 함께였다. 원래 퇴근해도 좋을 시간에 함께 가 준다니 내심 반가웠다. 수빈마마를 필두로 지하철을 타기로 했는데, 특이한 것은 지하철역 안에 매표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신문이나 먹을 것을 파는 가판대에서 표를 팔고 있었다는 것.

 밤이고 초행길이라 아무리 지도를 보고 내 위치를 파악하려고 해도 잘 찾아지지가 않는다. 아우 답답해..그러는 사이 굉장히 큰 카페에 도착. 정확한 정보가 없어 설명하긴 어렵지만 여긴 매우 오래된 곳임에는 틀림없다. 한국가스공사의 배성렬 변호사님이 실수로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지셨는데, 종업원의 걱정 어린 눈빛을 먼저 받았던 건 다름 아닌 변호사님과 함께 넘어진 의자. 알고 보니 이 의자는 벌써 40살이 넘었단다. 몇백년씩 된 건물들을 보는 것도 흔한 일이 되다 보니 크게 놀라진 않았지만 40년 전 사람도 앉았던 의자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니 대단한 일임엔 틀림없다. 어둑어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높은 천장을 장식한 화려한 샹들리에가 은은하게 비추는 카페 분위기에 취한 채 한참동안이나 얘깃거리들이 오고갔다. 다른 곳을 더 둘러보겠다는 일행들을 등지고 배변호사님과 윤경부장님과 나는 택시로 시내를 빠져나왔다.
 호텔로 돌아와 나를 반기는 건 토론회 안내 웹페이지 만드는 일. 17일 농수축산신문사와 공동으로 aT센터에서 대토론회를 하기로 했는데 그 전에 홍보가 필요하니 홈페이지에 띄울 팝업창과 행사내용을 알리는 웹페이지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어차피 오늘은 잠자기는 틀린 것 같으니 서둘러서 일을 시작했다. 한 시간, 두 시간...아침이 오고 밥 먹으러 갈 때쯤 일은 마무리 되어 가는데 그 때 예상치 못한 방문! SK텔레콤의 임근환 과장님이 방에 잠깐 들르셨다. 늘 변화무쌍한 리듬을 타는 웃음소리로 모두를 즐겁게 해주시는 과장님이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시지? "혜진씨 인터넷 잠깐 쓸 수 있어요?" "네, 그럼요." 하고 내가 대신 찾아 들어간 웹사이트는 SK텔레콤 사이트. 과장님은 먼 유럽으로 오셔서까지 웹페이지 하단에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글씨의 주식 시세가 궁금하셨나보다. 주식가격을 보시더니 표정이 약간 어두워지시는 듯 했지만 다시 웃음전도사로 돌아오신다. "과장님, 앞으로도 제가 인터넷 할 때마다 주식시세 알려드릴께요~"

 아침식사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부페식인데, 햄, 치즈,빵의 종류가 정말 다양해서 다 맛볼 수 없을 정도다. 혹시라도 우리나라에서라면 쉽게 먹을 수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면 냉큼 집어들었다. 그러다가 한입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일정의 반 정도는 지나야 김치고 매운 음식이고 떠오를 것 같았는데 의외로 유럽에 온 지 이틀째였던 네덜란드에서 아침을 먹을 때 아 따끈한 쌀밥이 먹고싶어 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물론 딱 한 번 그러고 난 이후로는 한식이나 중식을 계속 먹어서 그런지 아침에 빵과 베이컨을 먹는 게 벌써 익숙해진 듯 했지만 말이다. 나중에는 밥보다 빵이 더 좋아졌다. 게다가 이 호텔은 식당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맛있는 빵에 입이 즐겁고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주는 눈의 즐거움까지 덤으로 받아 잠이 부족한 것 따위는 전혀 문제도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