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에 실린 이정환 GS&J 이사장의 글입니다.

식량위기론은 높아지고 쌀시장은 개방되는데···

GS&J 이사장   이정환

  20세기에 세계 인구는 15억에서 61억으로 증가하고 세계 곡물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으나 품종개발과 화학비료 사용으로 단수가 급격히 증가하여, 맬서스의 예언과 달리 지난 100여년간 곡물 실질가격은 계속 하락하는 풍요로운 시대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식량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자 옥수수 소비증가의 65%, 식물성 유지 소비증가의 37%가 바이오 연료생산에 이용되었고, 그 결과 모든 곡물의 재고가 일시에 감소하여 2008년의 곡물파동이 일어났다(이정환 외, “‘08식량위기론, 그 실상과 대책,” 「시선집중 GSnJ」69). 그 후에도 세계 곳곳의 기상이변으로 가격폭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는 중국의 곡물수요 폭발이 또 다른 파동을 불러오지 않을까 모두가 우려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도 우리나라는 이제까지 주식인 쌀은 수입을 엄격히 통제하여 자급기반을 유지하여 왔고, 그것이 식량자급율을 24% 수준이나마 유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왔다. 그러나 쌀 수입통제의 근거가 되었던 ‘관세화 유예’라는 특별조치가 올해로 끝난다. 쌀은 총 열량섭취의 15%를 차지하는 핵심 식량이고, 자급기반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곡물이므로 쌀 시장의 전면적 개방은 식량안보에 대한 위기감을 더욱 높일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2015년 이후에도 ‘관세화 유예’ 조치를 연장하는 것, 다시 말하면 쌀 시장 개방을 연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UR협정문을 세밀히 살펴보면 우리나라 쌀에 대한 관세화 유예는 한시적 조치였고, 따라서 그 시한이 끝나는 2015년에는 관세화를 통해 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것은 명백하다고 생각된다. 관세화 하지 않는 유일한 길은 WTO의 이른바 웨이버 조항에 의해 일시적 의무면제를 받는 것인데, 그 일시적 조치나마 받으려면 WTO 회원국 3/4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그 동의를 받기 위해서는 이해당사국들에게 TRQ(관세화 유예의 대가로 수입하게 되어있는 이른바 저율관세 수입쿼터) 증량은 물론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해야 하므로 전혀 실익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매우 유사한 입장에 있는 필리핀이 궁여지책으로 웨이버조항을 적용하여 일시적 의무면제를 받으려 하고 있으나, 단지 5년간의 면제에 TRQ를 무려 2.3배나 늘려 주는 조건으로도 아직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쌀시장을 개방하되 관세를 충분히 높여 수입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구조를 만드는 것이 쌀 자급기반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안이 되었다. 다행히 우리가 준비를 철저히 하여 WTO 회원국들의 검증공세를 잘 방어한다면 500%를 넘는 관세를 부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 그렇게 된다면 이미 수입되고 있는 TRQ 40만 7천톤 이외에 쌀이 수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쌀은 시장개방에도 불구하고 자급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식량안보 문제로 돌아가자.

식량안보 문제를 논의할 때 주의하여야 할 것은 첫째, 식량위기 관리체계가 필요하기는 하나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 식량수급은 에너지 수요 및 대체 에너지 기술개발 등에 따라 바이오연료 수요가 얼마나 증가할 것인가? GMO 등 단수증가 기술과 기후변화 등 공급 요인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따라 전혀 달라질 것이다. 또 중국의 경제발전과 농업생산이 어떻게 달라지고, 투기자금이 어디로 튈 것인가에 따라 세계 곡물가격은 폭등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실질가격으로 보면 2008년의 가격폭등은 20세기의 장기적 가격하락 추세 속에서 나타난 파동의 하나이며, 이미 장기적 슈퍼 사이클의 하강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박환일, “국제곡물가격은 계속 상승할 것인가?”, 「시선집중 GSnJ」148). 요컨대 위기대응체계는 필수적이나 불확실성이 매우 크므로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면 상황 전개를 세밀히 점검하면서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둘째,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농지면적이 380평방미터로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일본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적어 놀랍게도 중국이나 네덜란드의 1/3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의 기술조건 아래서는 쌀까지 생산을 포기하고 농지를 전부 사료 생산하는데 투입하여도 축산물을 자급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요컨대 현재 수준의 풍요로운 식품소비를 유지하려면 필요한 농산물의 상당부분은 외국농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아래서 어떻게 식량안보시스템을 구축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셋째, 식량위기 대응시스템이 어떤 상황에 대비하려는 것인가를 명확히 하여야 한다. 극단적인 상황은, 세계적으로 공급이 구조적으로 부족하여 해외조달이 안 되거나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우이고, 또 다른 상황은 단기적 공급부족 혹은 물류 이상으로 국제시장에서 일시적으로 곡물을 조달하기 어려워지는 경우이며, 각각의 경우에 따라 대처방안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먼저, 앞서 지적한대로 우리나라가 현재 수준의 소비를 유지하려면 식량의 상당부분을 해외생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므로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식량공급 부족 상황에 대비하려면 식량수급을 전체적으로 통제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가령 축산물 소비와 생산을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곡물수요를 줄이고, 농지이용과 농산물 소비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대로 식량수급은 지구환경·경제시스템에서 결정되어 수급과 가격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러한 통제 위주의 대책을 세우는 것은 비용이 너무 크고 국민적 합의를 얻기도 어렵다. 또한 그러한 상황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기보다는 일시적 공급부족이 반복되면서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므로 그런 추세를 주시하며 단계적으로 대책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식량안보체제는 흉작이나 물류라인의 장애 등에 의해 일시적으로 물량을 확보하기 어렵거나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에 대비하는 것에 목표를 두는 것이 현실적이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수급이 빠듯하여 세계 재고가 적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이런 일은 빈발할 가능성이 높고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

일시적 공급부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국내외에 적절한 량의 곡물을 비축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국내비축보다 공급 부족시 즉시 도입할 수 있는 곡물을 해외에 비축하는 것이 효율적 대안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국제곡물유통사업을 하면, 산지 및 수출 엘리베이터, 산지로부터 수출항까지의 운반선이나 철도, 수출항으로부터 국내 항까지의 선박 등에 항상 상당한 재고가 있으므로 이것이 곧 해외비축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재고를 유사시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가장 비용을 적게 들이는 안보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외환과 같이 유사시 다른 나라와 식량을 서로 교환하는 스와핑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