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8일 농민신문에 실린 이정환 GS&J 이사장의 글입니다.

네덜란드인가, 스위스인가

GS&J 이사장   이정환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농업도 네덜란드와 같이 수출농업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대통령의 뜻에 따라 추진하였던 대규모 영농회사 및 유통법인 사업은 실패로 끝났고, 그 연장선상에 있던 동부팜한농은 계륵으로 전락하였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도 창조경제 패러다임을 통해 농업을 미래성장동력으로 만들어 가야한다며, 올 농식품부 업무보고에서는 농업을 네덜란드와 같이 핵심 수출산업으로 발전시킬 방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과연 대통령의 이러한 주문에 농식품부가 어떻게 응답할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농업이 성장주도산업이 될 수 있다느니, 네덜란드와 같이 수출산업이 되라느니 하는 말은 농업계의 시장개방 반대를 잠재우기 위한 레토릭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연구소 GS&J의 인터넷 저널 「시선집중 GSnJ」가 2회에 걸쳐 상세히 분석하였듯이, 네덜란드는 17세기부터 유럽의 물류 중심지로서 중개무역과 가공무역이 왕성하게 발달하였고, 농식품 수출은 그러한 독특한 역사와 환경의 산물이다. 또한 처음부터 국민이 필요로 하는 농산물의 대부분은 인접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농업은 간척지 중심으로 수출용 농축산물에 특화할 수밖에 없는 특이한 지리적 여건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농업생산액의 두 배가 넘는 농식품을 수출하고는 있지만, 농가당 평균 1,650만원이 넘는 직불금을 받으면서도 농가의 1/3은 사회보장제도의 대상이 될 만큼 빈곤하다. 우리는 방대한 농식품 수출액에 가려진 네덜란드 농업의 실상을 보아야 한다.

「시선집중 GSnJ」는 역시 2회에 걸쳐 스위스 농업과 농정에 대해 심층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스위스는 1996년, 농업은 국민이 필요로 하는 농산물을 생산하고 다원적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 존재이유라는 인식 위에 헌법에 ‘농업이 국민을 위한 식품공급, 자원 및 경관보전, 그리고 농촌지역의 주민분산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라고 규정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적 자유원칙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도 하였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첫째 생태성과(ecological performance)에 따라 직불금을 지급하고 둘째, 친환경적이고 동물친화적인 농업생산을 장려하고, 셋째 소비자를 위한 식품의 표시규정 제정과 감시, 농약 등 화학물질 사용의 규제, 그리고 연구와 교육을 담당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고 명시하였다. 스위스는 이러한 헌법정신에 따라 생태적 성과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감시를 전제로 농업예산의 74%를 직불금으로 지출하고 있고, 그 결과 평균 농가소득의 54%가 직불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스위스도 일찍이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였고, 우리나라보다 앞서 작년 7월에는 중국과도 FTA를 체결할 만큼 매우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개방정책으로 농가의 교역조건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지난 10년간 20% 이상 악화되어 농업소득은 감소하였지만 직불금을 포함한 농가소득은 20% 이상 증가하였고, 농업생산은 국민이 필요로 하는 농산물 생산을 중심으로 꾸준히 증가하여 소비자를 만족시키고 있고 대부분 국민이 방대한 직불금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네덜란드인가? 스위스인가? 농식품부와 농업인, 그리고 소비자가 다 함께 한국농업의 존재이유와 여건을 다시 생각하고 농정방향을 재확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