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무역대표부의 커크 대표와 상원의 보커스 재무위원장이 연이어 ‘한국은 숨어있지 말고 협상테이블에 나와 쇠고기시장을 전면 개방하라’며 한미FTA협정의 추가협상을 거칠게 압박하였다. 이들이 말하려는 것은 30개월령 이하로 제한된 쇠고기 수입조건을 폐지하라는 것이다. 미국이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는 있다. 2003년에는 미국이 우리나라에 쇠고기를 22만톤이나 수출했는데 작년에는 고작 5만톤 정도 수출하는데 그쳐 미국의 당초 기대에 크게 못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의 수출부진이 월령제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미국은 2003년 이후 한국산 쇠고기가 어떻게 변신했는지 모르는 듯하다. 한우농가는 그동안 고급육 생산을 위해 2003년에 25%내외에 불과하던 거세우 비중을 불과 7년 만에 90%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쇠고기 생산량의 40%나 되던 3등급 비중이 지금은 10% 밖에 안 되는 반면 1등급 이상은 30%에서 65%로 늘어나 한우고기의 주류가 되었다. 한우와 수입 쇠고기와의 맛 차이는 그만큼 커졌고 소비자가 미국산 쇠고기를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내산 쇠고기 중 비교적 맛이 떨어지는 육우도 2003년에는 3등급 비율이 80%였으나 지금은 50%대로 줄어든 반면 2등급은 15%에서 35%로, 거의 없던 1등급 이상도 10%대로 늘어나 수입쇠고기와의 맛 경쟁력이 크게 신장되었고 미국산 쇠고기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제 미국산 쇠고기는 국내산 쇠고기가 아니라 값이 싼 돼지고기 시장을 파고들지 않으면 시장을 넓히기 힘들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겹살과 돼지갈비 등에 대한 선호가 유난히 높아 돼지고기시장을 잠식하려면 미국산 쇠고기 가격이 돼지고기보다 충분히 낮아야 하나 현재 가격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호주산 쇠고기보다 가격이 높아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수입재개 후 미국산 수입비중이 한때 40%까지 상승하였다가 25%대로 곤두박질 친 데서 나타나듯 호주산에 대한 맛과 가격경쟁력이 소비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끝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산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을 완전히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꼭 위험하다고 믿지는 않더라도 더 값싼 호주산이 있는데 구태여 논란이 많았던 미국산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소비자는 생각한다. 값이 더 비싸지도 않은 돼지고기를 마다하고 찜찜한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이런 소비자 심리는, 자동차의 경우 성능과 값에 차이가 없다면 누구의 잘못이었던 안전성 문제로 시끄러웠던 브랜드를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과 같다.

이런 상태에서 월령제한을 폐지시키면, 나이든 쇠고기와 일부 부산물의 수출은 좀 늘릴 수 있겠지만 겨우 잦아들고 있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찜찜한 기억을 다시 되살려 결국 미국산 수출에 역효과를 낼 것이고 우리나라 사회는 만만치 않은 찬반논란에 휩싸여, 양국 모두에 큰 손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08년에 미국산 쇠고기를 일시에 전면 개방한 것이 ‘촛불 저항’을 불러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미국산 수출에 결정적 장애가 되어 미국에 큰 손실이 되고 있다. 또 ‘촛불저항’은 우리나라 정치사회에 불신과 갈등을 고조시키는 단초가 되어 지금까지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