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쌀 재고를 사료용으로 처분하기로 했다는 보도에 정서적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농정을 통렬히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쌀 재고 문제는 이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지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에 대한 찬반과 비판을 넘어, 매우 깊은 통찰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선진국 농정도 농가소득 유지와 과잉재고 방지라는 두가지 목표를 어떻게 동시에 달성할 것인가 하는 난해한 ‘문제풀이’에 올인해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우리도 이제 그 ‘문제풀이’에 직면한 것이기 때문이다.

20세기 들어 기술발전으로 농산물 생산이 늘어나 곡물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자, 농가소득을 지지하기 위해 미국은 1930년대부터 유럽연합은 1950년대부터 중요 농산물에 대해 가격을 보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격보장으로 생산이 늘어나 가격이 더 떨어지자 이번에는 휴경보조금을 주어 생산을 줄이려 했으나 면적당 생산량이 늘어나 결국 실패한다. 그러자 1970년대부터 보장가격은 낮추어 수급균형을 이루고 가격하락분의 일부를 직접 농가에 보전하여 농가소득을 지지하려 하였지만, 실제로는 보장가격을 좀처럼 낮추지 못한데다 소득보전은 생산유인이 되어 또다시 생산과잉의 늪에 빠졌다.

우리와 같이 쌀이 주식이자 주작물인 일본도 농가소득 지지를 위해 정부가 쌀가격을 보장하였고, 그 결과 쌀 생산과잉 문제에 직면하자 1970년부터 논에 쌀 이외 다른 작물을 심으면 보조금을 주는 ‘생산조정제도’를 도입하여 수급균형과 농가소득 지지를 동시에 달성하려 하였다. 그러나 쌀 생산감소를 위해 보조금을 주는 면적이 우리나라 벼 재배면적보다 많은 110만 ha까지 늘어났는데도 정부 쌀 재고는 계속 늘어나 주정용, 사료용 등으로 처분할 수밖에 없는 쓰디쓴 실패를 맛보았다.

이런 실패의 경험을 딛고 WTO와 OECD가 현재 도달한 결론은 첫째, 가격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어 수급균형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둘째,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에는 하락분의 일부를 농가에 직접 보전하되 생산유인 효과가 가장 적은 이른바 ‘비연계(decoupling)’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다. 즉 당년 재배면적과 관계없이 당초 약정된 면적을 기준으로 보전액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2004년에 쌀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하여 수급균형을 이루되, 정부는 가격하락분의 85%를 농가에 직접 보전하여 농가소득의 급격한 하락을 막고, 만일의 생산부족에 대비한 비축미만 시가에 사들여 보관한다는 양정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비연계(decoupling)' 조건을 무시하고 소득보전액이 당년 재배면적에 따라 결정되도록 잘못 설계되어 생산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태생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더욱이 정부는 무이자 쌀 매입자금 지원을 늘리거나 추가매입을 하는 등 쌀값 지지에 매달린 결과 시장의 자율적인 가격결정과 수급조정 기능에 혼란을 불러왔다. 그렇게 된 것은, 수요 감소에 따라 쌀값이 점진적으로 하락하고 그 만큼 생산이 감소하여 수급균형을 이룬다는 2004년 양정개혁의 취지를 정책담당자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다, 쌀값 지지를 압박하는 정치권의 요구와 쌀값이 되도록 떨어지지 않아야 소득보전용 예산소요가 감소한다는 정부의 필요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결국 이제 재고미를 사료용으로 처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이렇게 되자 당황한 정부는 일본과 비슷한 생산조정제도를 도입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 황급히 올해부터 시험적 시행에 들어갔고, 일부에서는 소득보전제도를 폐지하자거니 정부가 농지를 사서 전용하고나 휴경시켜 벼 재배면적을 줄이자는 등의 주장까지 제기되어 이대로 가면 양정이 자칫 중구난방에 빠질 우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