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인스티튜트 이사장 이정환

 대선후보들의 농정공약이 발표됐다. 언론은 '농어촌에 기본소득 월 100만원 지급' '직불금 500만원으로 2배 증액'을 제목으로 뽑았다. 누구든 새 대통령은 뭔가 풍족하게 나누어줄 것 같은 분위기다. 공약은 표를 목표로 포장될 수밖에 없지만 그 포장 안에는 과거 현실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어야 한다.

산업화로 모든 자원이 도시와 제조업으로 빨려 들어가고 시장개방으로 수입 농식품이 농산물시장을 휘젓기 시작한 1980년대 말 이후 대통령은 7번 바뀌었다. 그때마다 새로운 구호와 정책, 퍼주기라는 따가운 비판을 받을 만큼 대규모 투·융자 계획이 추진됐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왜 농촌소멸을 우려하고 먹거리 위기를 말하고 있을까? 얼마 전 한 농정토론회에서 "새로운 사업을 생각하기 전에 멈추어 모든 정책을 평가하고 반성해 덜어낼 것을 덜어내야 한다"라던 주장이 귓가를 맴돈다.

직불금이나 농촌 기본소득으로 농촌소멸 막을 수 있나

농업의 본질은 태양에너지를 농축해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농업과 농정의 존재 이유는 당연히 먹거리의 안정적 공급에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이번 대선에서도 모두 식량자급률을 높이겠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 1인당 경지면적이 세계에서 가장 적은 현실 속에서 자급률을 정말 얼마나 높일 수 있을까? 식량자급률을 좀 높이면 먹거리 안보가 정말 튼튼해질까? 정작 중요한 것은 식량자급률 차원을 넘어 모든 국민이 원하는 먹거리를 언제나 자기소득으로 능히 조달하는 것이다. 양적 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식품인 마늘의 국내산 실질가격은 2000년 이후 2.4배, 국내산 고추는 1.6배 상승했다. 그런데도 마늘 재배면적은 4만4000ha에서 2만3000ha로, 고추는 7만4000ha에서 3만3000ha로 모두 반으로 쪼그라들었다. 우리나라 최대 농산물이자 주식인 쌀도 2010년 이후 실질가격은 30% 올랐으나 재배면적은 18%나 줄었다. 주요 농산물의 가격은 오르는데 재배면적은 주는 농산물 소멸이 농촌소멸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과연 직불금을 2배 올리거나 농어촌 기본소득으로 100만원씩 주면 이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 도리어 역기능은 없을까?

직불금을 2배로 늘린다지만 통계상의 농가수는 104만호인데, 경영체 등록수는 174만호, 기본직불 수령자는 112만명이다. 그런데 지급 대상 농지는 전체 농경지의 69% 수준이다. 받아야 할 농가와 농지에 제대로 지급하고 있을까? 목적했던 공익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농어촌주민에 기본소득을 지급한다지만 서울이 지척인 양평군과 땅끝 해남의 외딴 섬마을이 같은 농촌일까?

현실 성찰 위에 시장과 정부가 맡아야 할 일 구분부터

이제 각 후보캠프, 그리고 대선 후 설치될 인수위는 공약과 농정개혁을 말하기 전에 일단 멈춘 후 현실에 대한 성찰 위에 시장에 맡겨야 할 부분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구분하자. 농업경영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이지만 개별 농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 정부역할을 집중하자.

첫번째는 작황과 가격위험을 완충하는 장치를 구축해 농가가 뜻밖에 '벼락'을 맞을 위험을 줄이는 일이다. 이것은 젊은 농업인이 들어오고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농업 생산이 유지되기 위한 기본조건이다. 두번째는 먹거리를 공급하는 농업생산 활동과 생태환경 보전, 탄소중립이라는 사회적 요구가 충돌을 피하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 일이다. 직불제는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정책은 백화점식 단기 사업 중심에서 위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프로그램 중심의 중기계획으로 전환해야 한다. 영세율 등의 조치를 전제로 농업도 부가가치세 체제로 들어오고 디지털 기술에 기반하는 데이터 체제를 구축해 정책이 의도한 대로 집행될 수 있는 농정기반을 정비하는 일을 선행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모든 정책 목표는 그림의 떡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