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1세기에 왜 농업인가?(1) 

농업을 말하고 농정을 논의하기 전에 4차산업혁명 시대, AI가 인간 두뇌를 대체하는 21세기에 도대체 왜 새삼스럽게 농업을 말하는가, 그래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부터 말해야 한다.

1-1. 농업의 본질

농업은 태양에너지를 농축하여 농산물이란 형태로 인간에게 공급하는 산업이다. 인간은 이를 섭취하여 에너지로 환원한다.

지구상의 에너지원은 태양에너지 외에 중력이나 원자력도 있다. 중력은 어디에나 존재하여 모든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게 한다. 빗방울이 땅으로 떨어지고, 물이 산에서 평지로, 다시 바다로 흐르게 한다. 우리는 이를 이용하여 논과 밭에 물을 대고 물레방아를 돌리기도 했고 수력발전을 일으킨다. 바다에서는 달의 중력이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 해양 환경을 유지하고 때로 조력 발전으로 전기에너지를 생산한다. 원자력도 전기에너지를 생산한다. 그러나 방사능이란 치명적 물질이 생성되어 항상 위험이 따르고 폐기물 처리에도 한계가 있어 과연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력과 원자력이 있지만 인간이 이용하는 에너지는 대부분 태양에너지와 그 변형이다. 인류는 불의 발견으로 나무를 태워 에너지를 얻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 300여 년 가까이 석탄, 석유 등 화석 연료를 태워 방대한 에너지를 생산하였다. 생성된 에너지로 직접 기계를 돌리기도 하고 이를 다시 전기에너지로 전환하여 이용하였다. 나무와 화석 연료는 모두 태양에너지가 농축된 것이다. 최근 대체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는 풍력은 태양에너지 축적에 공간적 불균형이 발생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체 에너지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태양광 발전도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낮을 밝혀주는 것부터 태양에너지이다.

인간의 유일한 에너지원

그러나 인간의 몸은 중력과 원자력은 물론 태양에너지도 이용할 수 없다. 또 이들 에너지에서 파생된 화석 에너지와 전기에너지도 이용할 수 없다. 이들 에너지는 따스하고, 편리하고, 빠르고, 힘세고, 쾌적하기 위한 기계와 장치의 에너지일 뿐이다. 그리고 이들 에너지는 서로 대체할 수 있다. 물레방아를 돌리던 중력 에너지를 전기에너지가 대체하였고, 전기를 생산하던 화석 에너지를 원자력이 대체하였다. 기차를 움직이는 에너지는 석탄에서 디젤로, 전기로 대체되었다. 자동차는 이제까지 휘발유나 디젤 등 화석 연료를 태워 달렸지만, 앞으로는 전기 또는 수소에너지로 대체된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오로지 태양에너지가 농축된 농산물, 그 변형인 축산물을 섭취하고 소화하여 에너지로 환원한다. 그 에너지만 이용할 수 있고 다른 에너지가 이를 대체할 수 없다.

태양에너지가 농축된 그 농축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바로 농업이다. 그래서 농업은 인간 생존에 필요불가결한 산업이고, 다른 산업으로 대체 불가능한 불멸의 산업이다. 태양에너지는 날씨와 기상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나 지구상 어디서나 낮에는 사시사철 무한 공급된다. 농업은 이를 농축하는 것이므로 원료 조달에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4차산업혁명과 AI가 지배하는 세상이 오더라도 사람은 무한 공급되는 태양에너지를 농축하는 농업을 통해서만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농업도 생산물을 상품화하고 판매하는 과정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이것이 시장경제 속에서 지속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라는 점에서 다른 산업과 같다. 다만 태양에너지를 농축하여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기본 기능이 다른 산업과 다르게 한다(그림 1-1).

 그림 1-1. 농업의 본질: 특수성과 공통성

국내농업과 자유화  

다른 산업이 농업을 대체할 수는 없어도 다른 나라 농업이 국내농업을 대체할 수 있다. 농산물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것을 수입하여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상품과 달리 식품 소비는 하루 한시를 미루기도 어려우므로 농산물은 가까운 곳,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곳에서 생산하려고 한다. 수입에 문제가 생기면 당장 삶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제 농산물시장은 생산과 소비의 일부만이 교역되는 이른바 엷은 시장(thin market)이다. 엷은 시장의 문제는 생산과 수요가 조금만 변해도 가격이 폭등락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 총생산량의 10%만이 교역되는 어떤 농산물의 생산량이 1% 변동하면 교역량은 10% 증감하므로 국제가격 변동율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가격 변동성 크므로 교역에 의존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세계 각국은 1994년 농산물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기 위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에 합의하였다. 그 이상을 담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출범하였다. 그리고 각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체제를 경쟁적으로 구축하였다. 자유로운 농산물의 이동을 향해 달려왔다. 그러나 팬데믹을 거치며 순식간에 국경이 막히고 물류가 단절되는 것을 보았다. 그간 신뢰하여 마지않던 자유화의 한계를 모두가 각인하고 있다. 국내농업을 다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농촌의 본질  

태양에너지를 농축하기 위해서는 태양에너지를 흡수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농업은 넓은 공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 지역을 농촌이라고 한다. 농업적 용도로 사용하려면 식물 생육과 농작업에 적합하게 정비되고 적정한 농로와 관개 설비를 갖추어야 한다. 또한 농업적 용도로 사용되려면 분절되지 않고 집단화되어야 한다. 그런 농지를 농업구역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농업진흥지역’으로 지정하여 그 조건을 유지 보전한다.

농촌의 본질은 농업생산 공간이므로 그 지역의 토지는 농업적 이용을 전제하는 지역이다. 그 공간은 사람이 밀집하여 살고, 이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과 건축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시와 전혀 다른 경관과 특성을 갖게 된다. 이 지역 토지는 농업적 이용에 적합하게 유지 보전되도록 일정한 규제가 불가피하다. 토지가 개인 소유인 한 소유권과 충돌하므로 이를 조정할 기준과 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농촌 공간이 모두 농업적 용도에만 머물 수 없다. 우선 농업을 담당하는 사람과 그 가족이 살아야 하므로 그 필요를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 도로와 주택은 물론 학교, 의료, 문화 시설이 필요하다. 또한 농촌 공간은 자연과 생명체를 통해 특이한 공간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므로 그 특성을 이용하는 휴양, 관광, 거주 등 다양한 수요가 나타난다. 그런 수요는 경제가 발전할수록 커진다. 농촌 공간의 일부는 그런 필요를 충족할 수 있어야 부가가치 생산능력이 증가하고,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 그런 수요와 농업적 이용이 농촌지역 내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더욱이 경제가 발전할수록 비농업적 경제활동이 증가하므로 공장, 주택, 상업용 시설 용지가 필요하다. 그 대부분이 농지에서 조달될 수밖에 없으므로 농지전용 수요가 증가한다. 농촌의 본질은 농업생산 공간이므로 농업적 목적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지만 농업적 용도와 전용수요 사이에서 국민의 삶의 질을 극대화하는 균형점을 찾는 일이 중요해진다. 그 균형점을 찾는 기준과 절차를 규정하여 전용의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