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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2.04.04
제목
[산골여행 3] 2월 13일, 두타산 골짜기, 내가 왜소해 보이는 까닭 / 이정환 
첨부파일
 

* 이정환 이사장이 지난 겨울 다녀온 산골여행 세번째 글입니다. 

 

「산골여행 3」

2월 13일, 두타산 골짜기, 내가 왜소해 보이는 까닭

   

 

GS&J 이사장 이정환

 

 

 오늘은 진부 두타산 자락에 있는 황토방 펜션 ‘산골풍경’으로 간다. 시간에 쫓길 것도 없지만 공연히 아침을 서두른다. 매일 아침 하듯이 주말농장 반 평 비닐하우스에서 길러 가져온 모듬 채소에 양배추를 더한 후, 발사믹 소스로 드레싱하고, 양파와 방울토마토, 가지와 호박 몇 조각을 볶고 햄을 얹어 한 접시. 그리고 호두로 고명한 자가 발효 요구르트 한 컵, 통상은 토스트 반쪽에 계란후라이인데 오늘은 어제저녁 먹다 조금 남은 밥과 된장찌개가 있어 이로 대신하니 도리어 성찬이다. 창밖 황토밭을 바라보며 안반데기 정취를 아쉬워하는데, 어느덧 이제는 가야 할 시간!

 

  

여행용 가방은 물론이지만, 냉장고에 잔뜩 넣어 둔 먹을거리를 다시 챙겨야 한다. 우선 아이스박스에 냉동 쇠고기와 돼지고기, 냉동 새우와 바지락, 가리비, 냉동 만두와 잡채 등을 넣으니 가득하다. 샐러드용 채소, 대파, 양파, 호박, 가지, 두부, 김치 한 통 등 얼면 안 되는 것 한 보따리, 북어, 쌀 한 봉지, 라면 반 박스 등 얼어도 되는 것 한 보따리. 그뿐이 아니다. 발사믹 드레싱 한 병, 올리브유와 카놀라유 각 한 병, 발효 요구르트 한 병, 집에서 담근 조선간장 반병.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술 - 와인 세 병에 소주 세 병 등을 담은 박스 한 개. 놀랍게도 토스터도 있다. 아침에 토스트 반쪽 먹는 것을 매우 즐겨하는데 펜션에 토스터는 없다기에 집에서 챙겨왔던 것. 그 위에 노트북과 블루투스 스피커, 책 한 가방. 끝으로 오리털 방한복 한 가방. 이렇게 다 다시 챙겨 출발이다.

 

 ‘산골풍경’ 가는 길에 대관령 마트에 들렸다. 9일간 머물 예정이므로 발사믹 소스가 부족하고 두부와 달걀도 살 요량이었다. 발사믹 식초가 이런 시골에 있을까? 웬걸, 발사믹도 여러 브랜드에 바질 가루, 파슬리 가루, 나도 모를 소스류, 양념류가 잔뜩 갖추어져 있었다. 그래, 대관령은 올림픽 도시이자 전국에서 스키족이 모여드는 곳 아닌가. 그래도 이런 면 단위 시골에서도 웬만한 서양 식품을 다 살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니! 기분 좋게 슈퍼를 나섰다.

 

여기 앉아서 맥주 한잔한다면 신선이 된 기분 아니려나

‘산골풍경’은 두타산 휴양림 가는 중간에 있었다. 59번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두타산 이정표를 보는 순간 어딘가 낯이 익었다. 아, 작년 여름 소나기 쏟아지는 날 여기를 지나다 편의점이 보여 잠깐 멈추었지. 마침 소나기가 잦아들고 쌍무지개가 걸렸다. 쌍무지개다! 저쪽으로! 우산 펴! 소리치며 사진 찍고 난리 치던 그 수항계곡 너머였다.

 

수항계곡을 뒤로하고 또 다른 작은 계곡을 따라 1킬로 정도 갔을까 ‘산골풍경’이 나타났다. 너와 지붕 황토방 네 채! 여기 주인도 친절하게 짐을 날라주고, 안내한 방은 바로 계곡 앞. 옛날 시골 광문을 연상시키는 쇠고리가 달린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툇마루, 그런데 뜻밖에 소설책과 수필집 등이 꽂힌 책장이 있다.

 

 

미닫이문을 열자 황토벽에 귀여운 무늬  이불이 덮인 침대, 반대편에 주방과 화장실. 천장은 통나무 서까래에 전선을 팽팽히 늘리고 심플한 전등을 두 개 달았다. 계곡 쪽과 침대 쪽에 있는 격자무늬 창에 달린 보라색 레이스 커튼이 특히 시선을 끈다.

주인아주머니의 취향일까? 그보다는 젊은 손님들 취향에 맞힌 것이리라. 황토벽, 통나무 서까래와 어울려 전체 방 분위기를 ‘갑돌이와 갑순이가 알콩달콩’ 살고 있을 듯이 꾸민 디자인이다. 계곡 쪽 창밖에는 투박한 툇마루가 있고, 그 너머는 바로 계곡, 그리고 바로 치솟은 산자락은 크고 작은 가지가 드러난 겨울나무가 빼곡히 뒤덮고 있다. 여름에 이 툇마루에 앉아 작은 계곡 물소리 들으며 오이를 안주로 맥주 한잔하면 신선이 된 기분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글을 쓰고 읽을 테이블이 없다는 것이었다. 원목으로 만든 큼직한 원형 밥상을 책상으로 쓰라고 하지만, 다리를 꼬부리고 장시간 앉는 것은 너무나 불편한 일이다. 난감해하자 주인은 노트북과 책 한 권이 겨우 놓일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을 들고 왔다. 내가 본 테이블 중 가장 작은 것일 듯하지만 아무튼 너무나 다행이었다. 계곡이 잘 보이는 방 한가운데 침대에 붙여 놓자 침대를 보조 탁자로 쓸 수 있어 제격이었다. 

  

 

사라진 ‘초원의 빛’, 그들이 사는 법

5시경 침대 쪽 창 아래 아궁이에 불을 때러 펜션 주인이 온 것이 보였다. 나도 쫓아나가 인사를 하고 언제 이 펜션 사업을 시작했느냐고 묻자 50대 말 전기시설 회사를 퇴직하고 고향에서 골짜기 집터를 찾다가 이곳을 발견하였단다. 텐트를 치고 목수 한 사람과 황토방을 직접 짓기 시작하여 3년에 집 네 채를 지었단다. 좀 크게 지은 한 채는 살림집으로 하고 세 채는 펜션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이 황토집은 제가 직접 지었으니까 단열도 꼼꼼히 하였죠. 다른 펜션은 다 집 장사가 지어서 그런지 이런 겨울에는 방이 추워서 손님 못 받아요. 우리 집만 손님이 차요.”

자기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풍겼다. 산책길에 보면 근처에 있는 펜션 두 개는 정말 적막강산이었다. 문득 생각한다. 직장을 퇴직하던 그때 그는 ‘빛나던 꽃의 영광은 사라졌지만 그에게 남겨진 것’을 발견하였던 것일까? 거기서 새로운 힘을 얻었기에 이 산골에 살기로 했겠지. 그리고 텐트 생활을 하며 직접 집을 지을 용기를 냈겠지. 그리고 산골짜기 자연에 묻혀 긍지를 가지고 찾아온 손님들 시중을 들며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 아닐까.

내 주변 친구들도 다 나이가 들어 현직을 떠났다. ‘초원의 빛’도 ‘꽃의 영광’도 사라져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어떤 친구는 골프나 테니스에 열중하고 다른 친구는 매일 산에 간다. 전국 섬 산 완등을 목표로 하는 친구, 전국 둘레길 순례를 목표로 하는 친구, 여행을 열심히 다니며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친구도 있다. 헬스장에서 건강 관리하는 데 열을 올리기도 한다. 정말 좋은 글, 좋은 영상을 어디선가 찾아내 보내주는가 하면 페이스북에서 사람들과 이런저런 글을 주고받으며 감동을 주기도 하고, 예리한 글로 만만치 않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기도 하다. 다 멋있는 일이다. 몇몇 친구는 유튜브에 매몰되어 뻔해 보이는 가짜 뉴스, 온갖 비난과 증오의 말을 열심히 퍼 나르고 쏟아낸다. 남아있는 것에서 무엇을 발견하였기에 그런 증오의 힘이 나올까? 거기서 존재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 사라진 ‘초원의 빛’에 대한 분노일까? 그러나 증오의 말과 가짜 뉴스를 퍼 나르고 난 후에 허탈감이 밀려들지는 않을까? 심신이 황폐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과연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힘을 발견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그가 펜션을 지은 해부터 ‘조선왕조 500년’,‘한명회’ 등 많은 역사소설과 수필집을 발간한 신봉승씨가 자주 와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 방에 묵었단다. 그의 소설은 MBC, KBS에서 대하드라마로 제작되어 공전의 히트를 했다. 신봉승 작가와 내가 이렇게 연결되다니! 그의 뛰어난 문필 능력의 부스러기라도 이 방구석 어디에 남아있지 않을까? 아무튼 기분이 좋다.

처음 보는 순간 나의 분위기가 신 작가와 매우 비슷하여 깜짝 놀랐다며 하얀 머리를 쓸어 넘긴다. 평화롭고 깊이가 있어 보이는 모습이다. 그는 장작을 아궁이 속 깊이 밀어 넣고 일어서며 김치가 필요하면 주겠다고 한다. 김치는 한 통이나 있다고 하자 그저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점심을 준비하는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흰머리의 펜션 주인이 접시를 들고 웃으며 손짓한다. 창문을 열자 아무 말 없이 도라지 등 나물이 담긴 접시를 내밀면서 다소 계면쩍은 미소를 지었다. 웬 나물을? 나중에 알았지만 정월 대보름 나물 먹는 날이었다. 좋은 사람이다. 깊이가 있는 사람이다.

 

며칠 후 그가 막걸리 한 병을 들고 찾아왔다. 초면인데도 그는 스스럼없이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그는 어려서 천연두를 알아 마마 자국이 있는 데다(지금은 없어졌지만) 몸도 아주 작아 동네와 학교에서 외톨이었다. 교회가 그의 유일한 위로였고 안식처였다. 그 인연으로 군 제대 후 목사 가족이 하는 신발창 공장에 취직하였으나 고의 부도를 내고 임금까지 떼어먹는 것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살면서 보니까 교회 밖에 좋은 사람이 도리어 더 많더라구요. 예수님은 열심히 믿지만, 교회는 안 나가요.”

무교회주의자인 셈이다. 그런 와중에 여행에 빠져 이미 1980년대에 남해안을 도보 여행하는가 하면 울릉도 여행길에 만난 암벽 등산가를 따라 주말마다 백운대를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나이 들어 두타산 골짜기에서 노부부 둘이서 긍지를 가지고 황토방 펜션에 열중하고 있다. 역경과 도전의 인생사가 그에게서 어떤 깊이를 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평탄한 삶을 살아온 내가 왜소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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