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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5 농민신문에 기고한 GSnJ 이사 배종하 전 FAO 베트남사무소장의 글입니다.
‘경자유전’ 현실에 맞게 재해석 필요하다
GSnJ 이사 배종하 (전 FAO 베트남사무소장)
물고기를 잡는 그물은 적정한 그물코를 사용해야 한다. 그물코가 너무 크면 잡아야 할 고기들이 빠져나가고, 너무 작으면 잡지 말아야 할 새끼들까지 잡힌다. 그물코는 행정에서는 규제에 비유할 수 있다.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규제가 과다하면 정책 의도와 다르게 선의의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겨나고, 너무 허술하면 빈틈을 이용해 악용하는 사례가 생겨난다. 그래서 규제 완화는 어렵고 때로는 시간이 걸린다.
농업정책에서 규제가 가장 많고 복잡한 게 농지제도다. 우리나라 농지제도는 오랫동안 ‘경자유전(耕者有田)’이라는 원칙의 토대 위에 서 있다. 농사짓는 사람이 농지를 가져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강한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라 전통적으로 소유 상한이 있었고 임대차는 엄격하게 금지했다.
하지만 산업화·도시화가 본격화하면서 농촌 현실은 빠르게 변했다. 1960년대부터 이농이 늘어나고 도시로 떠난 자녀 세대가 농사를 이어받지 않으면서 농지의 소유주와 경작자가 다른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이런 변화 속에서 기존의 분산된 농지 관련 제도를 통합해 새롭게 정비한 것이 1994년에 제정된 ‘농지법’이다. 이 법은 최초로 농지의 소유·이용·보전·거래를 하나의 기본 체계 안에서 다뤘다.
제도가 바뀌었다고 해서 현실과 법의 간극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임차농지의 비율은 전체 농지의 47%에 달한다. 절반 가까운 농지를 소유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경작하고 있다. 농촌의 급격한 고령화를 고려한다면 새로운 인구가 농촌에 유입되지 않는 한 임대차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제도 속에서 경자유전은 살아 있지만, 현실 속에서 경자유전은 무너지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경자유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때다.
농지를 바람직하게 활용하기 위해선 누가 땅 주인인가보다는 누가 책임 있게 농사짓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과거 지주와 소작인의 불평등한 관계는 없어져야 한다는 철학이 그대로 남아 임대차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것이 현행 제도다. 하지만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가 과거와는 달라졌으며, 현장에선 광범위한 임대차가 일어나고 있는데 예외적으로만 허용한다는 것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임대차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것이 아니라 건전한 임대차, 경작자 중심의 농지 소유가 이뤄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농지은행·공동영농·농지이양은퇴직불제 등 농지규모화와 세대 전환을 촉진하는 제도들이 있지만 효과가 크지 않다.
안정적 영농을 위해서는 임차 기간을 반영구적으로 길게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고, 나아가서 임차인이 농지를 쉽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책도 요구된다.
‘쉽게’라는 말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장기 임대차를 하는 경우 임차인에게 농지를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한 정책이다. 고령화가 심화하는 농촌 사회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선 젊은층이 농촌에 들어와야 하는데, 이를 위한 진입 경로를 마련하는 정책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농사짓는 사람이 농지를 생산적으로 이용하고 소유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은 경자유전 원칙에 충실한 정책이다. 경자유전을 1950년대 언어로 붙들 것이 아니라 2020년대 현실에 맞게 다시 해석하는 제2의 농지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 농민신문] 원문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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