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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04.17
제목
[이정환의 겨울산골 살기 6]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첨부파일
 

* 이정환 이사장의 겨울 산골 살기 마지막 에세이입니다.

 

 

「이정환의 겨울산골 살기 6」

“4월은 잔인한 달이다”

    

 

GS&J 이사장 이정환

 

 

오늘로 3주간의 ‘동안거’가 끝난다. 올해도 작년 동안거 끝나는 날 갔던 평창 산속의 작은 카페 ‘이화에 월백하고’에 가서 커피 한잔과 음악으로 ‘동안거’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산골여행 11 링크) 그러나 뭔가 미진한 것 같아 이를 접고 다시 진부령으로 갔다. 지난번과 반대로 먼저 고성으로 가서 ‘유서 깊은’ 46번 도로를 타고 소똥령마을, 소똥령이야기, 알프스 스키장을 거쳐 진부령 정상에 섰다. 다시 한번 60여 년 전을 추억하며 이곳 마을 이름을 딴 ‘흘리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했다. ‘이화에 월백하고’와 같은 정취는 없으나 카페가 있어 다행이지 않은가. 그리고 항상 강원도 깊은 산골을 떠올리게 하는 로망의 인제에서 점심을 먹고 홍천을 거쳐 주말농장으로 향했다. 

주말농장 집에서는 소원했던 아내가 반갑게 맞아주었고 마당에는 올해도 복수초가 솟아올라 있었다. 매해 이맘때 복수초 새싹을 찾아내는 것은 주말농장의 첫손가락 즐거움이다. 나무는 달력이 없어도 필경 태양의 각도와 낮의 길이로 계절의 변화를 칼같이 알아챌 것이다. 그렇다면 땅속 깊이 웅크리고 있던 복수초는 어떻게 우수 경칩임을 알았을까? 계절을 알았다 하더라도 잘 못 건드리면 부서질 듯이 연약해 보이는 이것이 어떻게 이 딱딱하게 언 땅을 뚫고 올라왔을까? 생명의 신비고 기적이다. 아마도 뿌리에 저장된 양분을 아끼며 겨우내 겨우 생명을 부지하였으리라. 이제 그 남긴 모든 양분을 일거에 쏟아부어 언 땅에 틈새를 만들고 사력을 다해 고통을 참으며 헤집고 나왔을 것이다. 마치 엄마가 온 힘을 다해 고통을 참으며 아이를 낳듯이. 복수초인들 생명의 탄생인데 어찌 고통 없이 세상에 나올 수 있으리오.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언 땅을 고통스럽게 뚫고 올라올까? 때로는 영하의 꽃샘추위를 견뎌내야 하고 늦게 내린 눈 속에 갇히기도 하는데 왜 이렇게 일찍? 생명의 불가사의이다.

 

 

 

엘리엇(T .S. Eliot)의 “4월은 잔인한 달”을 떠올린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흔들어 깨워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나니.

대지는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눈 속에 덮이고

마른 구근이 가냘픈 생명을 먹여 살리고.

(‘황무지’ 중에서)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The Waste Land)

 

복수초 바로 옆에는 나와 함께 긴 세월을 살아, 이제는 밑동이 갈라진 고목 라일락도 있다. 엘리엇이 말한 라일락이다. 그 고목 가지에 몽우리가 통통하게 부풀러 올랐다. 겹겹이 싸인 외피 속에 겨우내 웅크리고 오므려 저장 양분을 아끼고 아끼며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위를 견뎠으리라. 이제 각도가 높아진 햇빛이 죽은 듯 웅크리고 있던 몽우리를 흔들어 깨우자 겨우내 잠자던 뿌리가 언 땅을 헤집어 물기를 빨아올렸을 것이다. 그 물기를 따라 뿌리와 줄기에 남아있던 양분이 일거에 몽우리로 몰려든다. 꼬부려 웅크리고 있던 몽우리는 이를 받아 겹겹이 꽁꽁 싸매고 있는 외피를 사력을 다해 밀어 떨쳐버리고 있으리라.

봄이 화려해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말할 수 없는 변화의 고통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다. 그 화려한 모습 이후, 복수초는 바로 옆의 쇠뜨기와 끊임없이 자리다툼을 해야 한다. 라일락은 갈라진 밑동으로 달겨드는 개미 떼와 매일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방심하다가는 밑동이 개미에게 점령당해 갈기갈기 부서질지도 모른다. 이 갈등과 싸움을 부추긴 봄은 잔인하다. 칼바람에 모든 것이 얼어붙었던 지난겨울이 도리어 평화로웠다고 추억하는 순간을 수도 없이 맞이할 것이다. 쇠뜨기도 개미 떼도 없던 시절! 복수초와 라일락에도 삶은 고해런가.

엘리엇은 풍요롭지만 황폐해진 당시의 유럽 사회를 비탄하는 뜻으로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 시가 그저 멋있다며 흘려들었으나 최근에는 그의 비탄에 공감한다. 우리의 모든 삶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함께하고, 좋아하고,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다 알게 된다면 세상은 실망과 절망, 싸움과 증오의 난장판이 되어 인간사회는 파멸할지 모른다. 기술 발전이 가져온 모바일 혁명은 가까운 친구에서부터 만나지도 못한 사람이 쏟아내는 수많은 말을 수시로 세세히 알려준다. 이 친구가 이런 사람이었어!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그 자극적인 모습에 깜짝 놀란다. 그리고 수많은 정보와 가짜뉴스가 생성되고 삽시간에 퍼진다. 증오에 찬 가짜뉴스가 여기저기서 몰려오고 피하기 어렵다. 나도 뛰어든다. 아름다운 추억과 복수의 욕망이 뒤섞인다. 너도나도 확증편향은 심화되고 증오는 격화된다. 지성은 어디로 갔는가! 인간관계가 무너지는 것, 한 사람의 인격과 삶이 부서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되지 않을까?. 무섭고 정말 두렵다. 모바일 혁명은 ‘잔인한 4월’과 같다.

나는 요즘 영화와 TV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모함, 증오, 계략, 폭력, 범죄, 살인이 그것도 매우 잔인한 모습으로 난무한다. 현실 세계의 그런 모습에 경끼가 날 지경인데 드라마와 영화에서 또 본다고! 좀 평화롭고 감동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 항상 경계하고 다툼해야 한다. 때로 너무 고단하다. 위로받고 싶다. ‘동안거’ 동안 TV와 뉴스를 끊고 카카오톡과 문자는 가족에게 연락용으로만 열어 두었다. 세상은 조용하고 편안했다. 돌아온 지금 다른 것보다 그것이 그립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TV를 켜고 카톡을 연다. 현실은 다가오고 머리를 흔든다. 그렇지만 ‘동안거’ 일기를 정리하고 ‘농업과 정부’ 원고도 서두르며 편안함을 느낀다. 그것이 피난처가 될까?  

 

(2023.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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