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 연구위원 임정빈(서울대 교수)

  국제 식량가격이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9월 세계식량가격지수가 1년 전보다 32.1% 올라 2011년 9월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고 발표했다. 국제 식량가격이 크게 상승한 주된 이유는 식량의 주요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미국·유럽·호주·중국 등지에서 대규모 산불, 폭염과 홍수 등 극심한 자연재해가 발생하면서 식량 공급이 줄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기후위기로 과거보다 가뭄·홍수·태풍·한파·폭설·산불 등 자연재해가 빈번히 발생할 뿐 아니라 그 강도가 점점 세지면서 앞으로 돈이 있어도 식량을 구하지 못하는 식량 부족 사태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기상이변이 심화하면서 과거와 달리 획기적인 식량 증산도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세계 인구 증가와 중국·인도 등 신흥경제국 경제발전으로 인해 축산물 생산을 위한 사료용 곡물과 식량 수요는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 식량 수급 불균형은 자연스럽게 세계 식량 부족 사태와 식량가격의 폭등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또한 국제 식량교역(특히 곡물)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수출이 일부 국가에 집중된 반면 수입은 다수 국가에 분산되는 공급 과점적 시장을 이룬다는 점이다. 쌀·밀·콩·옥수수 등 주요 식량은 작물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미국·브라질·아르헨티나·캐나다·호주 등 상위 5개 곡물수출국의 수출 비중이 85% 이상이다. 이렇게 세계 식량 공급이 소수 수출국에 집중돼 있다보니 일부 수출국의 공급이 불안정하면 바로 국제시장의 불안정성으로 직결되는 문제가 나타난다. 특히 최근 미국·캐나다·호주·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주요 식량수출국의 기상이변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제 물류 장애가 겹치면서 세계적으로 식량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식량은 인간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와 영양을 공급하는 중요한 원천이다. 안정적인 식량 공급은 시대를 초월해 모든 국가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과제다. 식량안보 확보는 국가 이익과 생존 측면에서 매우 결정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국 내 식량자급능력이 충분하고, 해외에서 효과적으로 식량을 조달할 능력이 있다면 식량위기 발생 때 적절한 대처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는 식량위기에 봉착하고, 정치·경제·사회적으로도 큰 혼란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일반 공산품은 공급이 부족하거나 가격이 급등할 때 소비를 미뤄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식량은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필수품이기 때문에 소비를 늦출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 이것이 바로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국가 안위와 직결되는 안보문제로 간주하는 이유다.

특히 세계 7위권의 식량수입국이자 곡물자급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인 21%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 식량안보 확보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 중요한 국정과제다. 물론 필요한 식량을 우리가 원할 때 언제든지 적정 가격으로 원하는 물량만큼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제 식량 공급체계·무역구조,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생산의 불확실성 증대 등 현실 여건은 우리가 원하는 물량을 필요한 때 적정한 가격으로 쉽게 수입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지 않는다.

앞으로 식량안보 체계 구축은 국가 안위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내 식량자급능력 제고에 보다 구체적인 정책적 노력이 이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