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nJ 연구위원 임정빈(서울대 교수)

안타깝게도 한국 농정은 농업계 안팎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농업계는 여전히 어려운 농가 경제와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정책 지원을 지적하며 ‘농업 홀대’를 주장한다. 반면 비농업계는 ‘퍼주기식 지원’ 등의 표현을 동원하면서 정부의 농정 추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농정이 국민과 농민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다. 우선 농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상당수가 농업정책의 실질적인 성과는 농업의 구조적 특성상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된 후 평가돼야 한다는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다.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농업문제는 경제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농업과 비농업부문 간 생산성과 소득 격차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격차를 줄여주기 위한 농업 구조조정은 중장기적으로 지속적인 추진이 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농정의 기조나 우선순위가 요동치면서 임시방편적 단기 대책만 반복돼 정책의 지속성과 실효성에 대한 불신을 야기했다.

여론 주도자들의 오해와 편견도 있다. 중앙언론이나 일반 경제부처의 관료들은 국제경쟁력이 낮은 농업에 대한 정책 지원이 경제 효율성 측면에서 국가 자원의 재배분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며, 이는 농정에 대한 비판적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농업은 생산과 가격의 불확실성이 크고, 식량안보와 같은 공공재적 특성, 환경·생태·경관 유지 등의 비시장적 외부경제 효과로 인해 시장실패가 심각한 분야다. 이 때문에 국가 전체의 경제 효율성과 사회적 후생 증진을 위해서도 정책 개입과 지원이 정당화되는 분야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이 농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농업정책 형성 과정에서 소통과 협의를 통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점도 농정 신뢰를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농정 수립과 추진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는 물론 유관 부처, 정치권, 전문가 간에 깊이 있는 논의와 소통이 부족해 협치 기반의 갈등관리 문화가 미흡하다. 대표적인 예가 ‘양곡관리법’을 비롯한 농업 입법 논란이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과 가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낮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공익형 프로그램도 부족해 농정이 단지 ‘농업과 농민만을 위한 정책’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요인이다. 예컨대 현행 공익직불제는 소농직불금과 면적직불금 중심의 기본형 직불제가 대부분을 차지해 전체 예산의 약 97%가 농가소득 안정에 몰려 있다. 이로 인해 법령이나 정책명과는 달리, 농업·농촌의 공익 기능 증진을 위한 실질적인 공익형 프로그램은 부족하다는 근본적 한계를 지닌다.

농정에 대한 신뢰 하락은 농업계에 좌절감을 갖게 하고, 비농업계에는 농정 추진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그 뿌리에는 농업인의 땀과 눈물 그리고 헌신이 있었고, 이제는 국가가 책임 있는 농정으로 응답하며 농업을 균형발전과 식량안보를 이끄는 국가 전략산업으로 키우겠다”는 농정 철학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이런 대통령의 철학을 바탕으로 새 정부는 기존의 단기적 현안 중심의 처방을 넘어 중장기적 안목에서 지속가능하며 대한민국 농업·농촌·농민에 희망을 주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는 ‘국가 책임의 신뢰 농정’을 적극 펼쳐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