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 시니어이코노미스트  최지현

세계 곡물 시장은 지난해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호주와 무역분쟁을 치르고, 지난해 하반기 우크라이나 등 주요 곡물 수출국의 작황 부진까지 겹치면서 곡물 가격이 한때 폭등세를 보이는 등 그동안 불안한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3분기 곡물수입단가지수 전망을 보면 2분기에 비해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정부는 최근 계속되는 국제 곡물 가격 상승에 따른 업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식품 및 사료업체 등 사업체에 대한 세제와 금융 지원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들 조치에는 국제 곡물의 수입 절차 개선과 할당 관세 적용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정부 대책들은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인 조치이나 근본적으로 식량의 안정적 확보를 담보할 수 있는 중장기 대책이 필요하다. 코로나19와 같은 돌발적 식량 위기 상황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공급의 불안정 문제가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필요 곡물의 상시 비축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우리나라의 연간 곡물 수요량은 약 2000만t 내외이며 이 중 사료용은 약 1100만t으로 식용 곡물(가공 포함) 사용량보다 많다.

우리나라는 1963년에 제정된 양곡관리법에 근거해 국민의 주요 식량인 양곡의 수급 및 가격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양곡 비축 관리 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며, 비축 대상을 쌀을 포함한 미곡, 맥류, 콩을 포함한 두류와 옥수수 등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쌀을 제외하고 실질적인 곡물 비축은 시행하지 않고 있다.

곡물 공공 비축 제도는 자연재해와 전쟁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식량위기에 대비해 정부가 일정 물량의 곡물을 비축하는 제도이며,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식량안보를 위한 비축을 허용 보조로 간주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곡물 자급률이 낮고, 주요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은 사료 곡물의 안정적 확보와 사료 가격 안정을 위해 1975년부터 사료용 옥수수, 소맥, 대두박 등을 대상으로 곡물 비축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 사료업체, 축산 농가 등이 갹출해 필요한 기금을 조성하고, 운영은 관련 공사, 농협, 사료업체가 맡아서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국제적인 곡물 수급 비상 상황이 있을 때마다 사료용 원료 비축 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돼 국회 입법까지 논의되었으나, 기금 조성 등에 있어서 업계와 축산 농가의 의견 수렴이 부족해 성사되지 못했다. 사료 곡물 비축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관련법을 제정하고, 관련법에 따라 보전 기금도 조성돼야 할 것이다. 사료 가격 안정을 위한 기금 조성을 위해서는 사료업계와 축산 농가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사료 곡물 비축은 민간 사일로에 보관료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거나, 별도 비축용 사일로를 건설·운영하는 방법도 있다.

곡물 비축 제도는 세계 주요 곡물 생산지에 진출한 국내 민간기업의 해외 농업 개발 사업과 연계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해외 생산-유통-수출 등 곡물 가치사슬 강화 측면에서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 국제가격 수준으로 비축 물량의 일정 비율을 책임 공급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한다면 해외 진출 기업의 안정적 성장과 국내 곡물 수급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