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14 농민민신문에 실린 GS&J 연구위원 양승룡 고려대 교수의 글입니다.

농산물 가격의 불편한 진실

GS&J 연구위원 양승룡(고려대 교수)

  필자의 주연구분야는 농산물 가격이다. 연구 업적 대부분이 가격과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 및 유통구조가 차지한다. 필자가 대학원에 진학해 학문의 길에 들어섰던 1980년대 가격은 우리 농업문제의 중심에 있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도 가격은 여전히 농업문제의 시작이자 끝이다. 가격은 농업소득과 경영안정의 결정 변수이며, 농업기피와 농촌소멸의 근본 원인이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그럴듯한 농산물 가격대책을 수립하지만 가격문제는 여전하다. 필자는 그 이유가 가격문제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 있다고 본다. 문제의 진단이 정확하지 않으면 적절한 처방도 할 수 없다.

농산물 가격문제는 두가지다. 첫째는 가격 수준이 다른 상품이나 자산(특히 토지나 자본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을 뿐 아니라 경제성장 과정에서 더욱 낮아진다는 것이다. 낮은 농산물 가격은 농업 수익성의 하락과 확대 재생산의 어려움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 농업이 공히 겪는 숙명적인 문제다. 농산물 가격의 상대적 저위는 (거의) 완전 경쟁적 생산구조와 세계화에 그 원인이 있다.

경제이론에 의하면 완전경쟁 산업의 이윤은 ‘0’이다. 만약 이윤이 있다면 새로운 경영체의 진입이나 규모의 확대가 일어나 결국 이윤을 낼 수 없는 구조가 된다. 농업 경영체들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규모화를 통한 비용 절감과 기술개발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지만, 이는 결국 농산물 균형가격의 하락을 일으킬 뿐이다. 여기에 세계화로 포장된 무역자유화와 혁명적 정보화는 경쟁을 더욱 촉진시킨다. 전세계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농업 경영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농산물시장에서 경쟁력이 낮은 소농들에게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가격을 줄 리 없다. 이와 함께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식품 지출이 줄어드는 현상(엥겔법칙)도 농업의 사양화를 촉진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농산물 가격의 두번째 문제는 좀더 심각하다. 낮은 가격 수준은 규모화나 마케팅 전략, 집단행동 등을 통해 일정 부분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수시로 반복하는 가격의 급격한 변동은 농가 파산이나 생계, 더 나아가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문제다.

농산물 가격의 높은 변동성은 기후나 병해충의 영향이 지대한 생산적 특성, 저장이 어려운 상품적 특성, 그리고 비탄력적인 소비행태에 기인한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기상 예보나 복잡한 과정의 관측사업도 급작스러운 날씨변동에 따른 생산 차질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농산물 가치에 비해 높은 비용이 소요되는 저장도 가격 등락폭을 완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풍년기근의 원인이 되는 수요의 비탄력성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작황이 좋아 생산이 증가하면 가격은 생산 증가율보다 더 크게 하락한다. 이는 농산물 수요가 가격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산이 감소할 때 가격이 폭등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대체재가 거의 없는 농산물에 대한 이런 소비행태는 아무도 바꿀 수 없다.

농산물 가격의 이같은 고질적이고 치명적 문제는 구조적이고 근원적이다. 이를 애꿎은 중간상인의 농간이나 경매제 같은 거래제도의 탓으로 돌려선 올바른 해법을 찾을 수 없다.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각 원인에 대한 세밀한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 농업의 생존을 위해 보다 전향적이고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출처: 농민신문] 원문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