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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2.03.07
제목
[산골여행 1] 2월 9일, ‘동안거’ 안반데기로 / 이정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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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환 이사장이 지난 겨울 다녀온 산골여행 에세이를 12회에 걸쳐 게시할 예정으로 그 첫번째입니다.

 

 

「산골여행 1」

2월 9일, ‘동안거’ 안반데기로

   

 

GS&J 이사장 이정환

 

 

 겨울 산골여행을 떠난다. 농담 반 진담 반 ‘이정환 동안거 2022’라고 이름 붙인 이번 산골여행의 화두는 ‘나에게 남아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얼마 전 친구가 영화 “초원의 빛”의 한 장면을 담은 카톡을 보내왔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정말 아름다운 나탈리우드, 애절한 러브스토리, 이 영화에 모두가 열광했다. 아름다운 여배우,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만 기억했던 이 영화가, 그런데 워즈워스의 시 “초원의 빛”으로 끝난다. “초원의 빛도 꽃의 영광도 사라졌지만,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도리어 남아있는 것에서 힘을 발견하노라.”

 

이번 ‘동안거’는 안반데기다. 안반데기는 나에게 말할 수 없는 끌림이 있다. 10여 년 전 어느 여름날 용평 리조트에서 무작정 드라이브에 나섰다. 아름다운 수하계곡, 비극의 도암댐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기에 그냥 올라간 곳이 안반데기. 와! 이 산꼭대기에 이 넓은 배추밭이라니! 화전민의 땅이었던 곳에 고랭지 배추를 심기 시작하여 40년, 1,000미터 고원에 무려 60여만 평, 전국 최대 고랭지 채소 단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곳에 눈이 쌓이면 어떤 모습일까? 호기심을 못 이겨 몇 년 전 정말 2월에 혼자 2박 일정으로 왔다. 너무 좋았다. 운휴촌, 구름이 쉬어가는 마을에는 황토방이 있었고, 눈 덮인 그 넓은 설원은 환상이었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 하늘을 향해 뻗은 하얀 언덕과 능선, 그 위로 솟아오르는 아침 해, 붉게 물드는 설원, 언덕 모퉁이를 돌자 황급히 도망가는 고라니 떼. 최고의 겨울 여행이었다.

이번 동안거는 안반데기다. 망설임 없이 결정했다. 그런데 전에 묵었던 운휴촌은 불통이었다. 알고 보니 운휴촌은 낡아 폐쇄되고 2층 양옥의 새로운 펜션이 있단다. 황토방 기억에 빠졌던 터라 왠지 내키지 않아 4박만 예약을 했다.

용평에서 좁은 산길을 오르니 강릉시와의 경계 피덕령, 그 아래 펼쳐진 것이 안반데기다. 근데 눈이 거의 없다. 눈 덮인 설원을 기대했던 터라 아쉽기 그지없으나 어쩌랴. 예약이 잘돼서 처음 계획대로 ‘동안거’ 전 기간을 이곳으로 예약했다면 어찌했을까. 세상사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가 없음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새로 지은 듯이 보이는 2층 양옥 ‘하늘정원펜션’에 도착했을 때 주인으로 보이는 머리가 하얀 남자가 아주 반갑게 맞는다. 그리고 가방과 짐을 방으로 옮기는 일을 도와준다. 알고 보니 그 겨울에 여기 와서 묵을 때 소주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었다. 언제든 집에 차 한잔하러 오라고 하기에 그의 집에 잠시 들렀다. 그는 20여 년 전 강원도 일대를 떠도는 중장비 기사로 밭 정비 일을 부탁받고 여기 안반데기를 드나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고랭지 배추 농사가 돈이 되는 것으로 보였다. 여름 한 철만 일하면 되고. 중장비 기사를 때려치우고 배추 농사를 시작했다. 여기서 만난 사람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하고 이곳에 조금만 집을 지어 정착했다. 이제는 배추 농사 1만 8,000평에 방 네 개짜리 2층 펜션 한 채, 살림집을 겸한 체험관 한 동을 운용하는 영농주식회사 사장이 되었다. 아내는 펜션을 맡아 하고, 취직시험 공부를 하던 아들이 후계를 잇기로 하여 작년부터 일을 돕고 있다고 한다. “두세 번 낙방해서 이제 취직하면 지각생인데 뭐하냐고 했죠. 알아듣더라고요.” 떠돌이 중장비 기사에서 이제 영농과 관광농업을 겸영하는 주식회사 사장으로, 아들을 후계자로 두어 미래에 대한 큰 걱정 없이 60을 지나고 있다. 그는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이다.

 

늦은 점심은 샐러드와 토스트 반쪽, 방울토마토에 냉동 새우와 바지락, 포도씨유를 듬뿍 넣은 볶음이다. 볶음하고 난 프라이팬에 물을 조금 붓고 대파를 썰어 듬뿍, 그리고 집에서 담근 조선간장으로 간하면 깔끔한 팟국이다. 맛이 좋다.

 

산책에 나섰다. 날씨는 영하 9도에 약한 구름, 넓게 펼쳐진 언덕배기 밭이랑에 가슴이 뭉클. 이 황토 언덕배기마다 5월이면 배추 모종이 심기고 한 포기 한 포기가 낮에는 치열하게 태양에너지를 농축하고 밤에는 잎과 줄기를 만드는 삶을 펼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먹어 에너지를 얻어 생명을 부지하고. 세상은 조화다.

 

일출 전망대 쪽으로 향했다. 더 넓은 황토밭이 힘차게 경사지를 따라 뻗어 오르고 있다. 그 황토밭 사이를 걸으며 복받치는 감동에 눈물이 흐른다. 몇 년 전 한탄강 변 펜션에 딸네와 함께 갔다가 저녁나절 산책. 마침 이른 봄, 무더기, 무더기 쟁기로 갈아엎어 검은 흙이 끝없이 이어지고 수로에는 봇물이 콸콸. 그 아스라이 저쪽 논두렁 길을 한 농부가 무언가 지고 어디론가 천천히 걸어간다.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오고 눈시울이 젖어 들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위로 뻗은 황토밭을 향해 아버지! 라고 외쳤다. “농사가 제일이다.” 모두가 자식은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한다는데, 농사짓지 말라고 공부시킨다는데, 농사를 지으라고 내가 어릴 적부터 수없이 말씀하였던 아버지는 이 땅과 거기서 자라는 생명에 대해 깊은 이해와 애정을 가지셨던 것일까? 나이 70을 넘은 나이에 후계자로 믿는 아들에게 선진 기술과 경영을 배워오라고 일본 유학을 보내시며 어떤 꿈을 꾸셨던 것일까? 결국 그 아들은 배신하고 말았지만(GS & J Institute (gsnj.re.kr)).

평양에서 해산물 도매상으로 이름을 날리셨다던 아버지는 “농사가 최고다. 자기가 한 대로 돌아온다. 남과 다툴 일이 없다. 너는 농사를 지어라” 그리고 아버지는 주변에 밭이 나오면 사셨다. 거의 매년. 그러던 어느 해 길가에 있는 조그만 필지 하나를 사신 후 어머니는 밤에 그 밭에 나가 혼자 “이게 마지막이야, 마지막” 하시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나이 들고 점점 농사일이 힘들어지는 것을 느끼셨으리라. 매해 땅을 살 수 있었던 세월은 가고 ‘이제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셨으리라. 어머니는 늘 말씀하였다. “땅같이 좋은 것이 없다. 씨만 뿌려놓으면 혼자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거짓말하지 않는다.” 힘차게 뻗쳐오른 황토밭을 보며 두 분의 각고의 노력과 지혜, 강인함에 대한 존경과 감사, 사랑, 그리고 회한이 사무친다.

   

저녁 멍애전망대 쪽으로 걸었다. 해는 저물고 어두워 가는데 차박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이들 차가 여러 대 보였다. 그들은 오늘 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빛과 내일 아침 해돋이에 환호하겠지. 그때 저쪽 황토밭 언덕 위에는 어두워지고 있는 옅은 회청색 하늘을 지고 젊은 연인 둘이 걷고 있었다. 너무 아름답다. 젊음이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시 타임 머신을 타고 50년 전으로 간다. 내가 한 여인과 석양을 받고 초원 언덕 위에 서 있다. 아름답다!

 

mbk2005  [date : 2022-03-21]
안반데기 동안거 여행기 감동입니다. 언제 저도 한번 도전해보겠습니다.
tang7  [date : 2022-03-08]
가 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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