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산지 쌀값 약세 지
“지원은 지원답게” / 김
공익형 직불제 중심의 농
문틈으로 본 조선이야기(5
농산물가격대책, 결국은
[267호] (수정판)대북 식
전 세계의 화웨이 제재에
산지 쌀값 하락세 지속…
[74] 2018 쌀관세화 검증
외국 사진작가 작품모음
GS&J 감성교차
 
Home > GS&J논단 > 에세이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6.11
제목
문틈으로 본 조선이야기(5), 전복을 따는 여인, 채복녀 
첨부파일
 

 

 

 

 문틈으로 본 조선 이야기(5) 
 

전복을 따는 여인, 채복녀

 

   

 

하상(夏祥) 이두순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실학자 이학규(李學逵, 1770~1835)가 진해에서 귀양을 살면서 전복을 캐는 여인의 괴로움을 읊은 ‘채복녀’라는 장시가 있다. 워낙 긴 시인데다 해녀의 잠수어로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고 있어 해석이 쉽지 않았다. 새기는 과정을 밝히는 의미에서 시의 새김에 더하여 소감을 적어 놓았다. 작업을 끝내고 나니 처연한 느낌뿐이다.

  

 <전복을 캐는 여인, 채복녀>

물고기 먹음에 전복을 탐하지 말고,

모름지기 길쌈하는 아내를 얻을지라.

길쌈을 하면 죽어서 같은 무덤에 묻히지만,

전복을 탐하면 물고기 뱃속을 살찌게 하리.

食魚莫啖鰒, 取婦須績纑. 績纑死同穴, 啖鰒慕鮮腴.

<採鰒女> 李學逵(1770~1835, 洛下生集)

 

 전복은 미역 등의 해초 채취보다 바닷물 속으로 더 깊게 잠수해야 딸 수 있다. 이 구절에서는 여인이 전복을 채취하는 작업이 실로 위험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김춘택이 쓴 글에는 해녀가 수중에서 처할 수 있는 위험을, “물 밑의 돌은 매우 날카로운 것도 있어, 부딪쳐 죽기도 합니다. 거기에 있는 큰 물고기[蟲]나 뱀과 같이 사나운 것에 물려 죽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작업하던 사람이 얼어서 급사하거나 돌과 물고기 때문에 죽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비록 요행히 살아있지만 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囚海錄, 北軒集卷之十三). 여기서 충(蟲)이란 것은 상어와 같은 사나운 물고기를 뜻한다. 그러기에 농가의 여자가 죽으면 남편과 같은 무덤에 묻힐 수 있지만, 해녀는 뭍에서 전복을 따려다가 고기밥이 될 수 있는 그런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살을 당기면 기러기를 쏠 수 있고,

미끼를 던지면 농어를 낚을 수 있단다.

누가 물속의 전복으로 하여금,

진미로 삼아 소반에 채우게 했나.

援繳亦射鴈, 投餌亦釣鱸. 誰令水中鰒, 珍味充盤需.

 

 다른 일을 하면 위험을 피할 수 있는데도 해녀가 전복을 따야하는 일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바다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여인들이 일할 수 있는 잠녀(潛女)라는 특수한 기능이 발전하여 왔다. 그러나 전복을 따는 일이 해녀가 원해서 하는 일만은 아닌 것이다. 해녀들은 전복을 따서 관에 납부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 전복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원치 않을 때에도 물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아아, 저 전복 따는 여인네여,

삶과 죽음이 순간에 달렸구나.

사는 곳이 본래 개펄 소금기 땅이라서,

누에치기나 농사짓기는 할 수 없다네.

噫彼採鰒女, 生死寄斯須. 處地本潟鹵, 蠶穀非所圖.

 

  해안지방은 농사를 지을 농경지가 적은 곳이어서 생계를 위해서는 여인이 물속으로 들어가 수산물을 채취해야 하는 것이다. 옛 글에는 해녀를 잠녀라고도 기록하고 있고, 미역을 따는 해녀는 채곽녀(採藿女), 전복을 따는 해녀는 채복녀(採鰒女)라도 적고 있다. 사수(斯須)는 수유(須臾)와 같은 뜻으로 ‘잠시, 순간’을 뜻한다. 이 구절들은 바다의 생활환경과 물질하는 것이 항상 위험을 수반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름이 고기 잡는 천인 문서에 올라 있고,

발붙인 곳은 인어가 사는 곳 같다네.

창백한 피부에 붉은 머리칼,

무엇이 요괴나 귀신과 다르랴.

名參漁蠻籍, 足踏鮫人居. 霜膚赤髲髮, 何異魈與魖.

 

 조선시대에는 해녀, 특히 전복을 딸 수 있는 심해 잠수를 할 수 있는 특수 기능을 가진 해녀는 관에 등록하고 관리하였다. 원래 전복을 따는 일은 포작(鮑作)이라고 해서 남자의 일이었다. 그러나 포작의 수가 감소하면서 전복 진상의 역(役)이 잠녀들에게 전가되었다. 해녀들은 관아의 ‘잠녀안(潛女案)’에 등록되어 있었고, 채취한 수산물을 정기적으로 진상 또는 관아용의 명목으로 상납해야 했다. 그 중에서도 전복을 채취하는 부역의 부담은 혹심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해녀의 모습을 시인은 인어나 요괴처럼 보인다 하며 가엾이 여기며 바라보고 있다.

 

구월에서 시월로 넘어갈 즈음엔,

거센 물결은 아침저녁이 없다.

모래언덕에는 술항아리가 늘어섰고,

배를 뜨듯이 하기에는 우선 한 단지 술이다.

九月十月交, 驚浪無朝晡. 沙頭列酒缸, 煗腹先一壺.

 

 해녀가 물질을 하러 가는 날이다. 계절은 바로 음력구월에서 시월로 접어드는 때이니 초겨울이며 꽤 쌀쌀한 시기일 것이다. 풍랑이 심한 계절이어서 바다물결이 잔잔한 때가 없지만, 전복을 따러 물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바닷가에는 술항아리가 늘어서 있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덥히기 위해 마시는 술 한 잔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술이 항아리 째로 늘어서 있다고 한다. 해녀들이 마시기 위한 술이 아니라, 관리 나부랭이들이 해녀로 하여금 전복을 따오라 시키고, 저희들이 술을 마시려고 준비한 것일 수도 있다. 경랑(驚浪)은 ‘놀란 파도’라는 뜻이지만, 때 아닌 거센 물결을 말하는 것이다.

 

거센 파도, 집채 같은 흰 물결은,

뭍에 서서 보아도 두렵거늘.

사람에게 그 물결 속에 들어가게 하다니,

호랑이를 건드리는 어리석음과 어찌 다르랴.

洶洶白銀屋, 立地猶愁予. 敎人到彼中, 奚翅撲虎愚.

 

 바다에는 경랑(驚浪), 격랑(激浪)이 일고 있다. 시에서는 ‘희고 집채만 한 물결’이라는 의미에서 백은옥(白銀屋)이라 표현하고 있다. 뭍에서 바라보기에도 물결은 무섭게 치고 있다. 그런데도 해녀는 물질을 하러 물속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사람에게 그 물결 속에 들어가게 시켰다[敎人]’는 것이다. 4구의 어리석은 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물속에 들어가는 해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복을 따오라고 시킨 자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해녀는 구경꾼이 웃는 것을 돌아보고는,

흔연히 치마저고리를 벗네.

지닌 칼을 손목에다 비끄러매고,

줄을 끌어 몸에다 묶는구나.

女乃顧之笑, 怡肰脫裙襦. 持刀綰手腕, 牽繩約身軀.

 

 해녀가 잠수하기 바로 전의 모습이다. 옷을 갈아입고, 칼과 밧줄 등 도구를 준비하고 있다. 이건(李健, 1614~1662)의 제주풍토기에는, “잠녀들이 벌겋게 벗은 알몸[赤身露體]으로 물가에 그득히 들어선다.”고 기록하였다. 해녀들이 물일을 할 때에는 물옷을 입는다. 물옷은 ‘전통 해녀 옷으로 무명으로 만든 물소중의와 그 위에 입는 물적삼’을 말하며, 잠수작업을 하기 위해서 팔과 다리를 드러낸 옷이다. 이러한 모습을 양반네가 보고 ‘적신로체(赤身露體)’라 표현한 것이다. 물가에 있는 사람들이 희희덕대며 웃는 모습을 해녀는 힐긋 바라보고는 잠수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해녀가 구경꾼들을 바라보고 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을 수도 있다. 만약 웃었다면, 그 웃음은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닌 자조의 웃음이자, 쓴웃음이었을 것이다.

 위백규(魏伯珪, 1727~1798)의 글에도, “순풍이 불자 배를 띄워 평이도에 이르렀다. 온 포구에서 해녀들이 전복 따는 것을 구경했다. 이들은 벌거벗은 몸을 박 하나에 의지하고, 깊은 물속에 자맥질한다[順風流到平伊島, 統浦觀海女採鰒, 其裸身佩瓢到入深淵.].”는 묘사가 있다(‘금당도선유기’, 存齋全書). 물옷을 입은 해녀들이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양반들이 구경삼아 보는 것이다.

 

먼저 줄을 물결에 밀어 넣고는,

손으로 석 섬들이 박을 띄어 놓는다.

바로 몸이 뒤따르더니,

잠깐 사이에 강물 속 물오리처럼 떠 있구나.

先將繩抵水, 拍浮三石𤬜, 終乃以身隨, 瞥若江中鳧.

 

해녀가 전복을 따려고 막 입수하는 장면이다. 해녀가 물에 띄운 박은 ‘테왁’이라고 하는 것이다. 테왁은 박을 타서 꼭지를 피해 구멍을 내고 속을 파내어 비게 한 후 구멍 낸 부분을 물이 들어가지 않게 막는다. 해녀들이 잠수하다서 올라와 숨을 고르며 붙잡고 쉬는 장소의 역할을 하므로 가슴에 품어 안기에 알맞은 크기의 것을 선호한다. 해녀는 이제 바다에 들어가서 얼굴만 내놓고 떠 있다.

 

음침한 물속은 유리처럼 푸르고,

그 밝음에 참으로 놀라울 뿐이네.

용의 집이니 조개 궁궐이라느니,

전에 들은 것이 모두 헛소리로다.

陰沈碧琉璃, 晃朗驚一噓. 龍堂紫貝闕, 曩聞皆知誣.

 

 해녀가 잠수한 바다 속 풍경이다. 물속은 유리처럼 짙푸르고, 해가 비쳐들어 밝다. 시에서 말하는 용당(龍堂)은 ‘물고기들의 집은 용의 저택이요, 붉은 조개 누각은 붉은 궁궐이로다.’라는 옛글에서 출전된 것으로 깊은 물속을 표현한 것이다. 해녀가 들어간 물속은 전설에서 말하는 낭만적인 용궁이 아니라, 험한 현실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그 사정을 살펴 ‘헛소리’라고 일갈하는 것이다.

 

이끼와 말이 바다 속에 무늬를 그리고,

흐늘흐늘 위로 올라가는 듯하다.

하늘대는 붉은 갈기 같은 것이,

머리에 닿으면 놀라 위로 달아나고 싶어진다.

苔藻海之文, 滑澾登姸跗. 依依赤鬣鬐, 頭觸驚騰逋.

 

 이어서 해녀가 잠수해 들어간 심해의 모습이다. 깊은 물속에는 물풀들이 물살에 하늘대며 무늬를 그리고 있고, 모두 바다 표면을 향해 서서 위로 올라갈 듯 흔들리고 있다. 또 게 중에는 붉은 짐승의 갈기 같은 수초도 있다. 해녀가 헤엄을 쳐서 가까이 갈 때 수초가 머리에 닿으면 등골이 오싹해지고 놀라게 되는 것이다.

 

이제 짙푸른 아홉 구멍 전복이,

넓적한 바위 모퉁이에 납작하니 붙어있다.

자맥질로 조심스레 그 곁에 다가가니,

기운찬 물결 제멋대로 흐르고 있구나.

靑蒼九孔蠡, 匾貼盤陀隅. 潛身悄近歬, 風水浩自如.

 

해녀는 물속 바위위에서 드디어 전복을 발견한다. 능숙하게 자맥질을 해서 전복 쪽으로 간다. 구공여(九孔蠡)는 앵무조개껍데기(鸚螺殼)을 뜻하기도 하지만(金鑢, 『藫庭遺藁』, 衆器五絶), 시인은 전복[九孔螺]와 같은 뜻으로 쓰고 있다. 전복 껍데기에는 구멍이 8, 9개 뚫려 있고 석결명이라고도 한다.

 

 

칼을 빼고 바로 아래로 내려가,

머뭇거림 없이 한 번에 베어낸다.

아무런 놀랄 사이도 없이, 껍데기를 깨거나 떼어내 버리지도 않는다.

挺刀卒肰下, 一斲無趑趄. 無令稍驚覺, 粉碎不脫除.

 

 해녀는 전복을 칼로 얼른 따낸다. 능숙한 솜씨를 표현한 말이 초경각(稍驚覺)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어 전복이 놀라거나, 알지도 못하는 것이다. 칼로 잘라낸다고 했지만, 그것은 ‘빗창’이라고 부르는 해녀들이 전복을 뗄 때 사용하는 30센티 정도의 날카로운 철제 도구로 칼과 꼬챙이를 겸한 도구이다. 해녀가 전복을 껍데기 채 바위에서 떼어낸 것이다.

 그러나 바다 속에서 전복이 쉽게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김춘택(金春澤)의 글에서도 해녀가 말하기를, “돌에 붙어있는 전복은 껍데기로 단단히 엎드려 있고, 단단히 붙어 있기 때문에 바로 딸 수가 없고, 그 색깔이 검고 돌과 뒤섞여 있기도 합니다... 이때 숨이 가쁘게 되면 즉시 나와 박을 안고 숨을 쉬게 되는데,,, 그런 후에 생기가 돌면 다시 물속에 잠수합니다. 먼저 확인해 두었던 곳에 가서 쇠꼬챙이로 따서 끈으로 짠 주머니에 넣고 출발합니다.”라고 하였다(囚海錄). 시에서 해녀가 단숨에 전복을 찾고, 곧바로 딴 것은 행운에 속하는 것이다.

 

둥글고 둥근 전복을 손에 든 것이,

어찌 귀한 구슬 손에 든 것 같지 않은가.

물속에서 해녀가 나오는 곳을 알려면,

거품 방울 잠시 부글거리는 곳이라네.

團團握中殼, 何但賈胡珠. 要知出水處, 泡沫涌須臾.

 

 해녀는 둥그런 전복을 잡고 수면으로 헤엄쳐 나온다. 귀한 전복을 들고 오는 모습을 시인은 ‘고호주(賈胡珠)’라 표현하고 있다. 고호(賈胡)는 서역(西域)의 장사꾼으로, “서역의 장사꾼은 아름다운 구슬을 얻어서 자기 배를 가르고 숨겨 둔다.”는 고사가 있다. 이처럼 귀중한 전복을 반갑게 따가지고 올라오는 것이다. 물 밖에서 해녀의 상황을 궁금히 여기는 사람들이 바라보자니, 해녀가 물속에서 숨을 쉬는 공기방울이 뽀글뽀글 올라와서 해녀가 올라오는 곳을 알게 한다.

 

점차 머리모습이 들어나니,

고통스러워 얼굴색 변해 있네.

휘익 한번 길게 숨을 내뿜으매,

이제야 고기밥 면한 것을 알겠구나.

稍稍頭容露, 慘慘顔色沮. 騞肰乃一喙, 而今知免魚.

 

 드디어 해녀가 물 밖으로 얼굴을 드러낸다. 찬 물속에서 오랫동안 숨을 참고 있노라 해녀의 얼굴을 고통스럽게 변해있다. 그리고는 휘익, 하고 휘파람 소리를 내며 크게 숨을 쉰다. 해녀가 고통스러움을 한숨에 내뿜는 순간인 것이다. 그제야 주위 사람들도 무사히 해녀가 물 밖으로 나온 것을 안다. 김춘택의 북헌집에도, “숨이 가쁘게 되면 즉시 나와 박을 안고 숨을 쉬게 되면, 그 소리가 ‘휘익’ 나는데 그 어려움을 사람들이 모를 것입니다.”라고 적고 있다. 해녀가 바다 물속으로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동안 숨을 참고 있다가 물위로 나와서 한꺼번에 몰아쉬는 숨소리를 ‘숨비소리’ 또는 ‘솜비소리’라 한다.

 

숯불이 한 가운데 놓여있고,

이마에 땀나고 바야흐로 생기 돋네.

조용히 치마끈을 다스리고 나서,

다음으로 어린 젖먹이 끌어당긴다.

▦中置炭火, 顙泚方始蘇. 從容整裙帶, 次第提乳雛.

 

 해녀는 차가운 물에서 나와 불을 쪼이며 찬 몸을 녹인다. 깊은 바닷물이라 여름이라도 물이 차서, “추위에 얼어서 오돌오돌 떨려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여름인 6월이라도 그렇습니다. 불을 피워 놓은 따뜻한 데에 가면 생기가 돌아옵니다.”라고 하였다(북헌집). 그러나 채복녀 시의 계절은 초겨울이다. 바닷물이 차가운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시의 첫 구의 첫 자가 아쉽게도 소실되어 있지만 대강의 뜻으로 살핀 것이다. 바닷가에 불을 피워 놓은 것은 ‘불턱’이라는 것으로 추위를 피하기 위해 미리 피워놓은 것이다. 불을 쪼이고 생기가 돌자 그제야 해녀는 옷을 말리고는 물가에 두었던 젖먹이 어린자식을 끌어당긴다. 해녀들이 물일을 할 때 젖먹이 어린아이가 있으면 바구니인 ‘구덕’에 담아 물가에 두었다. 어린 것을 떼어 놓고 잠수해야 하는 해녀의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흰 띠 풀로 이은 허술한 집,

우물가 절구통에 석양햇빛이 비치누나.

지아비 장리쌀을 얻으러갔다 돌아오니,

비로소 새벽밥 거른 것이 생각난다.

蕭蕭白茅屋, 井臼殘陽徂. 夫壻糴米回, 始念晨爨疎.

 

 해녀는 전복 따는 물일을 마치고 석양녘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루 종일 바다에 있었으니, 물 긷고 절구질하는 가사 일이 아직 해녀에게 남은 것이다. 그제야 해녀는 새벽에 일을 가느라 아침밥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것이 생각난다. 해녀 자신이 허기지기도 했지만, 자식과 지아비가 허기졌을 것을 생각한 때문일 것이다.

 

이웃 사람들 바닷가에 모여 있고,

아전들이 독촉하러 달려오는구나.

신선하고 살진 것은 둥글게 회치려고,

급히 관아의 주방으로 가져간다.

鄰人簇岸上, 督促來府胥. 鮮肌藿葉鱠, 急遞歸官廚.

 

 해녀가 물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을 관리가 독촉하며 달려와 전복을 받아간다. 싱싱한 전복으로 회를 치려는 것이다. 시에서는 그 전복회를 곽엽회(藿葉鱠)라 적고 있다. 곽(藿)은 미역을 말하기도 하며, 곽엽(藿葉)은 콩잎을 말한다. 시에서는 둥글고 얇게 회친 전복을 말하는 것이다. 해녀가 목숨을 걸고 따가지고 온 전복을 회를 쳐가지고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정말 잡는 사람 따로 있고, 먹는 사람 따로 있는 상황인 것이다.

 

황납 빛 좋은 것 까서 꼬치에 꿰어서,

서울관리에게 가져가라고 내놓는다.

이제 전복 껍데기만 어지럽게 쌓여 있어,

그 여인의 그릇을 채우고 있을 뿐이네.

聯串黃蠟光, 乞與京官輸. 紛肰石決朙, 是女當桮盂.

 

 해녀는 좋은 전복을 까서 꼬치에 꿰어 서울로 보내는 진상품으로 바쳐야 한다. 전복의 껍데기를 까서 꼬챙이에 정성스럽게 꽂아 놓으니, 진상품 납부 독촉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진상물을 바치고 나면 해녀에게 남은 것은 수북이 쌓인 빈 전복 껍데기뿐이다. 눈물겨운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석결명(石決明)은 전복 혹은 전복의 껍데기를 말한다.

  

가련하구나, 그 여인을 마주하자니,

가마우지 같이 잘도 자맥질하였네.

몸이 따뜻하여 추위도 느끼지 않으니,

힘써 일하기는 비로소 어른이 되어서부터라네.

聯串黃蠟光, 乞與京官輸. 紛肰石決朙, 是女當桮盂.

  

 이하 구절은 이러한 처연한 정경을 본 시인의 느낌이다. 해녀가 헤엄쳐서 물고기를 잡는 새인 가마우지[烏鬼]처럼 자맥질도 잘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해녀 일을 하기는 생리가 시작되어[破瓜] 여성스러워지면서부터라 한다. 그러나 생리가 시작되었다 해도 어찌 몸과 마음이 다 어른이 되었을 것인가. 문녀(門女)의 의미가 확실치 않고 출전이 거의 없다. 단지 ‘인경이 울린 다음 다니는 여인은 잡지 아니한다[不逮門女]’란 구절에 의거 집밖에서 일하는 여인으로 보았다.

 

물속으로 이십 장이나 들어가,

밥 먹을 동안이나 숨을 쉬지 않는구나.

어려서는 아무런 걱정 없었고,

청혼이 온 마을에 넘쳤었는데....

 沒水二十丈, 閉息飯頃餘. 生小百無憂, 求㛰溢門閭.

 

 전복을 캐는 해녀가 잠수하는 깊이가 20장이라면 무려 36m의 깊은 물이다. 그리고 잠수 시간을 ‘밥 한 끼 먹을 시간[飯頃]’이라 하였다. 한 5분여나 되는 시간일까? 마지막 구에서는 물질하는 처자에게 ‘청혼이 집안과 마을에 넘쳤다네.’라고 읊고 있다. 척박한 자연환경과 중앙정부의 과중한 역(役)의 부과로 바다, 어촌의 생활은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해녀는 물질이라는 어려운 특수 기능을 가져 가계에 도움을 줄 수 있었기에 어촌에서 탐내는 좋은 며느리, 아내감이었다. 그러나 일단 전복을 따는 해녀[採鰒女]로 지정이 되면서, 그녀들의 고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제 정리된 채복녀 시를 한 번에 적어본다.

 

<전복을 따는 여인(採鰒女)>

물고기 먹음에 전복을 탐하지 말고,

모름지기 길쌈하는 아내를 얻을지라.

길쌈을 하면 죽어서 같은 무덤에 묻히지만,

전복을 탐하면 물고기 뱃속을 살찌게 하리.

주살을 당기면 기러기를 쏠 수 있고,

미끼를 던지면 농어를 낚을 수 있단다.

누가 물속의 전복으로 하여금,

진미로 삼아 소반을 채우게 했나.

아아, 저 전복 따는 여인네여,

삶과 죽음이 순간에 달렸구나.

사는 곳이 본래 개펄 소금기 땅이라서,

양잠이나 농사짓기는 할 수 없다네.

이름이 고기 잡는 천인 문서에 올라 있고,

발붙인 곳은 인어가 사는 곳 같다네.

창백한 피부에 붉은 머리칼,

무엇이 요괴나 귀신과 다르랴.

구월에서 시월로 넘어갈 즈음엔,

거센 물결은 아침저녁이 없다.

모래언덕에는 술항아리가 늘어섰고,

배를 뜨듯이 하기에는 우선 한 단지 술이다.

거센 파도 집채 같은 흰 물결은,

뭍에 서서 보아도 두렵거늘.

사람에게 그 물결 속에 들어가게 하다니,

호랑이를 건드리는 어리석음과 어찌 다르랴.

해녀는 구경꾼이 웃는 것을 돌아보고는,

흔연히 치마저고리를 벗네.

지닌 칼을 손목에다 비끄러매고,

줄을 끌어 몸에다 묶는구나.

먼저 줄을 물결에 밀어 넣고는,

손으로 석 섬들이 박을 띄어 놓는다.

바로 몸이 뒤따르더니,

잠깐 사이에 강물 속 물오리처럼 떠 있구나.

음침한 물속은 유리처럼 푸르고,

그 밝음에 참으로 놀라울 뿐이네.

용의 집이니 조개 궁궐이라느니,

전에 들은 것이 모두 헛소리로다.

이끼와 말이 바다 속에 무늬를 그리고,

흐늘흐늘 위로 올라가는 듯하다.

하늘대는 붉은 갈기 같은 것이,

머리에 닿으면 놀라 위로 달아나고 싶어진다.

이제 짙푸른 아홉 구멍 전복이,

넓적한 바위 모퉁이에 납작하니 붙어있다.

자맥질로 조심스레 그 곁에 다가가니,

기운찬 물결 제멋대로 흐르고 있구나.

칼을 빼고 바로 아래로 내려가,

머뭇거림 없이 한 번에 베어낸다.

아무런 놀랄 사이도 없이,

껍데기를 깨거나 떼어내 버리지도 않는다.

둥글고 둥근 전복을 손에 든 것이,

어찌 귀한 구슬 손에 든 것 같지 않은가.

물속에서 해녀가 나오는 곳을 알려면,

거품 방울 잠시 부글거리는 곳이라네.

점차 머리모습이 들어나니,

고통스러워 얼굴색 변해 있네.

휘익 한번 길게 숨을 내뿜으매,

이제야 고기밥 면한 것을 알겠구나.

숯불이 한 가운데 놓여있고,

이마에 땀나고 바야흐로 생기 돋네.

조용히 치마끈을 다스리고 나서,

다음으로 어린 젖먹이 끌어당긴다.

흰 띠풀로 이은 허술한 초가집,

우물가 절구통에 석양햇빛이 비치누나.

지아비 장리쌀을 얻으러갔다 돌아오니,

비로소 새벽밥 거른 것이 생각난다.

이웃 사람들 바닷가에 모여 있고,

아전들이 독촉하러 달려오는구나.

신선하고 살진 것은 둥글게 회치려고,

급히 관아의 주방으로 가져간다.

황납 빛 좋은 것 까서 꼬치에 꿰어서,

서울관리에게 가져가라고 내놓는다.

이제 전복 껍데기만 어지럽게 쌓여 있어,

그 여인의 그릇을 채우고 있을 뿐이네.

가련하구나, 그 여인을 마주하자니,

가마우지 같이 잘도 자맥질하였네.

몸이 따뜻하여 추위도 느끼지 않으니,

힘써 일하기는 비로소 어른이 되어서부터라네.

물속으로 이십 장이나 들어가,

밥 먹을 동안이나 숨을 쉬지 않는구나.

어려서는 아무런 걱정 없었고,

청혼이 온 마을에 넘쳤었는데....

 

 시는 고통스럽게 전복을 따는 해녀의 모습과 주변 분위기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힘든 일을 하고 나서 빈 전복 껍데기만 앞에 쌓아 놓고 있는 해녀의 모습이 애처롭다. 워낙 긴 시이지만 시구를 따라 읽어 가노라면 해녀들의 작업 현장의 분위기가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세상에는 불우한 삶을 살다 간 사람도 많겠지만 채복녀 시를 쓴 이학규(李學逵, 1770~1835)만큼 생의 질곡을 겪은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한양에서 태어난 시인은 26세에 학문을 인정받아 규장전운(奎章全韻) 편찬에 참여하였으나, 1801년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24년이란 오랜 세월을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이학규는 김해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에 시달렸고, 55세라는 늙은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유배에서 풀려났다. 시인은 어려운 유배생활 가운데에서도 기경기사시(己庚紀事詩), 금관기속시(金官紀俗詩) 등 시집을 엮었고, 저술로 삼서(參書), 동사일지(東事日知)를 남겼으며 문집으로 낙하생집(洛下生集)이 있다.

 시인은 오랫동안 김해지방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바닷가에서 민초들과 더불어 어려운 생활을 겪었기에 해녀라는 천민을 따듯한 눈으로 바라 볼 수 있었고, 또 전복을 따는 그 생생한 현장을 시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 시인이 읊은 채복녀의 생활은 실로 처연하기만 하다.

 

댓글
아이디 비밀번호

이전글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