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뮈는 그의 역작 ‘페스트’에서 역병의 창궐로 완벽히 외부세계로부터 고립 된 오랑시에 서 페스트와 싸우는 의사 리유의 입을 통해, 오랑의 상황을 보지 못한 외부로부터 쏟아지는 수많은 동정과 논평에 대해 말합니다. 
 “사람은 자기 눈으로 볼 수 없으면 어떤 고통을 참으로 나눠 가질 수 없다는 저 가공할 무력감을 저 음성들은 동시에 증명해 보이는 것이었다.” 라고. 
그런 의미에서라면 저는 아직도 매몰처분의 그 비극적 상황을 이해를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직은 남의 일인 것처럼 여겨지는 그 일이지만, 보이지 않는 악마가 서서히 목을 조여오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그 찐득한 불길함과 설마 우리 소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하는 근거 없는 낙관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면서 이 잔인한 겨울날이 마디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 목장은 처음 화성에서 의심축 신고와 매몰처리가 진행되었던 다음 날인 1월 4일에 백신접종을 했으니 이제 7일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물론 이곳도 6,000두 규모의 매몰처리가 진행된 양돈장 3km 반경 안에 들어 있어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 순간에 소를 잃은 사연은 많기도 합니다.

대학등록금으로 목장을 시작 했던 남편이 젊은 날에 불의의 사고로 가고 어린 자식 세 남매를 데리고 장부처럼 목장을 우뚝 세웠던 양주의 최사장은, 소를 다 묻고 매몰처분에 참관했던 아들이 먼저 병원에 입원한 후 며칠 후 자신도 입원을 했다 퇴원을 했는데, 우습게도 집안에 올해 달력이 하나도 없더랍니다.
12월 14일 양주 구제역이 터진 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달력이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허전하게 웃었습니다.

  양평에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목장하며 장가들어 이제 두 달 된 딸을 둔 한농대 제자가 전화를 했습니다. “별일 없으세요? 저희는 넘어갔습니다.”하며 남의 일처럼 허탈하게 툭 던지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앞으로도 “넘어갔습니다.”라는 말은 들을 때 마다 놀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밥을 안 먹기 시작하고 열이 나고, 순식간에 진행되어 가는 구제역 증상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오히려 멍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답니다.
그 증상이 얼마나 특별한지 처음 보는데도 단박에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 증상을 발견했을 때,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뛰는데 순간, 왜 허리에서 심장이 뛰나 생각했답니다. 얼마나 심장이 뛰었으면 허리까지 갔을까 맘이 아픈 일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개량을 하며 목장 나름대로 하나의 왕국을 이뤄왔던 그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요즘은 전화 받는 게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어제 오전에 이웃마을 젊은 애기 엄마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얼마나 소에 재미를 붙이고 열심히 사는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게 어여쁜 사람인데 다짜고짜 백신에 대해 물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잡지에서  본 것을 토대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도대체 왜 백신을 살 수가 없으며, 동물복지차원에서도 매몰처분을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무 약품회사에서나 만들어내면 될 백신을 왜 정부에서 자기 맘대로 하고 팔지도 않느냐고 화가 잔뜩 나 있었습니다. 법정 전염병이라 국가에서 관리해야 하고 백신 제조국이 영국이라 수입을 해야 하는 절차상의 문제가 있고 등등의 이야기를 장장 두 시간 반 동안에 걸쳐 나누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한 것은 농가들조차도 구제역에 대해서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허다해서 혼란이 더 가중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일이 사람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구제역으로 인해 땅속으로 사라져가는 우제류 가축수가 날마다 10만 단위 이상을 더해가며 어느 덧 140만 마리에 육박한다는 보도입니다.
사실 목장의 원활한 생산 활동의 회전을 위해 필수적인 인공수정이나 기본적인 사료공급에도 어려움이 많아, 설사 살아남는다 한들 그 많은 손해를 감수할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한 지경이지만, 지금은 앞날을 미리 걱정한다는 것조차 사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면 다시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는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에 이젠 익숙해졌습니다. 자동차도 사람도… . 그러나 대부분의 농가들은 귀신과 싸우고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어디에 어떻게 있을 지도 모를, 언제 쳐들어올지도 모를 그 괴물을 두고 맘이나 편하자고 소득을 한다는 자포자기 심정이 태반입니다.
  누구도 만날 수 없이 자식이나 부모와도 새해인사를 전화로만 주고 받아야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암담하기만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인간은 무슨 상황에서라도 기어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GSnJ 회원 여러분, 새해입니다.
지난해의 아쉬움을 달래고 힘차게 새로 시작 해 볼 새해를 이토록 경황없이 맞이하느라 인사가 늦었습니다.
올해 회원 여러분들께 드리는 새해 인사는“우공이산(牛公移山)”으로 할까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공(愚公)이 아닌 우공(牛公), 소걸음처럼 더디지만 하나씩 하나씩 GSnJ의 이상을 이뤄가자는 뜻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때 아닌 우공들의 수난으로 그만 엄두를 못 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봄이 저 땅 속 깊은 곳에서 오고 있다는 믿음으로 견뎌낼 것입니다. 동지가 지나면서 아주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한 해가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지금도 실험실 한 귀퉁이에서 이 가공할 몹쓸 병을 막아 낼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과학자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큰 힘이 됩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해가는 사람들의 힘은 언제나 역사 속에서 좀 더 나은 세상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저도 힘닿는데 까지 우리 소를 지켜내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모두 각자 자리에서 올 한해도 계획하신 일들이 잘 이루어지시길 빌며, GSnJ를 향한 즐거운 지지와 사랑이 꽃이 활짝 피어나듯 만발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11년 1월 11일 눈 내리는 조란목장에서 윤여임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