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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2.03.09
제목 어머님의 영정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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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 친구가 보내준 짧은 에세이가 코날을 시큰하게 해 회원 여러분과 같이 읽어 보고 싶어 게시합니다.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늘 달콤하며 슬프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를 어루만지기도 하고 순수하게 하기도 하고. 최근 우리 홈페이지 '감성교차' '핫동영상'으로 게시된 '아버지는 누구인가'도 한번 보시기를 권하고 싶고요. 오늘 에세이는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를 넘어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하고, 나와 크게 다르지 않던 형제자매의 죽음이 주는 당혹감과 슬픔을 생각하게 하여 더 가슴을 적시네요.

 

www.freecolumn.co.kr

어머님의 영정사진

2012.03.09


옷 정리를 하다 장롱 깊숙이서 시어머니의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일부러 찾으려 했던 건 아니지만 한동안 잊고 있던 터라 있는 자리를 새삼 확인하니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 사진은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를 대비해 미리 찍어 둔 영정사진입니다.  

작년인가 그러께인가 교회의 어르신들 모임에서 단체로 촬영한 것인데, 사진이 나온 후 어머님이 저희 부부에게 맡기셨으니 잘 보관하고 간수할 책임은 남편의 다섯 남매 중 막내인 저희에게 있습니다.
사진 속 어머님을 가만 들여다보니 “한복을 차려입고 오래서 모두 곱게들 하고 왔더구만 나는 그냥 입던 대로 찍었다. 다음에라도 한복 차림으로 오면 다시 해 준다는 데 마다했어.”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쩌면 그때 어머님은 ‘에이, 이깟 게 무슨 영정사진이 될라구, 찍어준다니까 찍었지, 난 아직도 멀었다, 멀었어.’ 라고 자신만만해 하시며 평상시 차림으로 촬영을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온화하고 엷은 사진 속 어머님의 미소와 평안한 표정 어디에서도 생의 마지막 순간을 당겨 체감하는 비장미 같은 것은 읽히지 않는 걸 보면 말입니다. 그럼에도 어머님은 영정사진을 장만하심으로써 지상의 과제를 마무리하신 듯, 혹은 마지막 선물을 받으신 듯 기분 좋아하셨고 홀가분해 하셨습니다.

12년 전 마흔 다섯 한창 나이에 세상을 하직해야 했던 친정 오빠가 자신의 영정으로 쓸 사진을 고르려고 사진첩을 뒤적이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간암으로 투병 중이던 오빠는 진통제에 의지해 가며 올케를 앉혀 놓고 서류 등을 간수하고 처리하는 방법 등을 일러주며 신변 정리를 하면서 자신의 영정사진까지 올케에게 건넸습니다. 그때 저는 오빠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해 보는 자체가 두렵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이승에서 영영 작별해야 할 오빠를 한 번 더 보기 위해 그 무렵 한국에 가 있던 저는 삶의 마지막 갈피를 헤집어 끄집어든 사진이 하필이면 여권용이었던 것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오빠는 아마도 병에 걸린 줄도 모르고 암 선고를 받기 직전, 올케와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나 본데 가혹하게도 그만 여권사진이 영정사진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빠가 죽은 후 한동안  저는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세월은 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오빠의 마지막 세상 연수였던 45세를 제 자신이 넘기면서부터는 그런 생각이 부쩍 더 들었습니다. 마치 일찌감치 죽음과  ‘쇼부’를 봐놓고 나머지 시간을  살아가는 느낌이었는데  아마도 동기를 잃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의 고통에 직면하려는 제 나름의 반응 방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후 제게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영정용으로 쓸 만한 사진이 있는가를 살피는 버릇이 새로 생겼습니다.  제 속에서는 3년 단위로 영정사진을 폐기하고 새로 만드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만약 아주 오래오래 살아서 완전 파파 할매가 되었는데 나이 50인 지금 사진을 쓸 순 없을 테니 살아있는 동안 3년마다 영정 사진을 바꿔 준비해 두는 것입니다.  

얼핏 기괴한 습벽 같지만 죽음을 대비하여 사진을 챙기고자 하는 이유는 죽어서도 예쁘게 보이고 싶다거나 장례를 치를 가족의 일을 덜어주자는 친절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3년 단위로 죽음을 정비하는 일은 같은 간격을 두고 삶을 돌아보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3년을 단위로, 살아가는 일에  닦고 조이고 기름을 치며 보살피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제게 영정사진을 고르는 일은 유한한 생에 대한 제 나름의 각성이자 정기점검인 셈입니다.

어머님의 영정사진을 돌아본 날, 정오 무렵 산책길에서 너무나 뜻밖에도 영구차 행렬을 만났습니다.  꽃으로 덮인 관을 모신 리무진과 그 뒤를 따르는 검은 자동차들을, 십 수년 만에, 그것도 큰길도 아닌 호젓한 동네 골목에서 보았으니 그대로 서서 우두망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하필 그때  그 자리에서 장례행렬을 만났는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기묘한 상황이라 어쩌면  하나님이 영정사진을  찍고 있는 제게 ‘잘 하는 짓’이라고 격려하는 사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1992년 호주로 이민온 후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거쳐 지금은 같은 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있다. 시드니에서 양식당 <라 포자>를 꾸리며 한국의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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