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축산 11월호 ‘윤여임의 농장일기’ 원고]

전통과 자연으로의 초대

 - 농촌사랑지도자 연수원 해외연수를 다녀와서-

  솜씨 좋은 여인이 정성어린 바늘땀으로 천년을 이어 나간 조각 천을 길게 펼쳐 놓은 듯 녹색과 다갈색 경작지가 끝없이 펼쳐진 너른 들판은 인간의 수고와 자연의 은혜가 어우러진 장관이었다. 곡선, 직선으로 때로는 사선으로 길이 달리고 강물이 흐르고 오밀조밀 집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 속 어딘가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남한 땅의 다섯 배, 가용면적이 80%이며 그 면적의 반이 농경지인 드넓은 땅을 지닌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에 첫발을 딛는 순간은 감회가 남달랐다.

  농민들 스스로 끊임없는 의견개진과 조율을 통해 뿌리가 튼튼한 자치조직을 만들어 가고 강한 연대의식으로 농촌을 유지하고 농업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들이 긍지를 지니고 농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가고 지지하는 시민의식을 지닌 나라. 계몽사상을 꽃 피우고 프랑스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의 기반을 만든 나라답게 우리가 방문한 코뮨(commune, 면 단위정도의 자치체)의 의장단은 손수 차를 따르고 설탕을 들고 다녀 권위의식과 하향식 전달체계에 익숙한 한국인들을 감동시켰다.

  유기농업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깨닫지 못할 정도로 관행농업도 수준에 도달한 프랑스 땅 여기저기에는 환경과 경작지 보호를 위한 휴경지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토록 의식의 선진화가 이루어지고 농부들의 긍지가 높은 농업대국 프랑스도 농업의 어려움은 예외가 아니라 농촌관광과 직판을 통해 끊임없는 자활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독일은 프랑스와는 경관이나 조건이 다르긴 해도 역시 선진국다운 농업과 환경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가 있다. 독일 리셔로데 환경센터에서는 인위적인 틀에서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는, 도시의 복잡함과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손과 마음의 체험을 통해 어린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기반에 대한 문제의식과 책임의식을 갖는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해 가도록 돕는다.

  리셔로데 환경센터의 교육은 헷센주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수업일수로 인정받는데, 4박5일 동안 이곳을 다녀간 아이들이 자신들이 먹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환경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당연하게 느껴졌다. 농업과 농촌, 환경과 에너지와 자연을 주제로 한 센터 안에서의 이런 저런 체험과 인근 농가를 방문해 먹을거리가 생산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며 햇살아래 맘껏 뛰 놀지 못하고 학원으로 전전하는 아이들과 도심에 찌든 이들을 자연으로 초대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 이라는 사실이 마음속 깊이 담겼다.

  점점 더 어려워지는 농민들의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수 십 년 전부터 시작 된 독일과 프랑스의 농촌관광, 엄밀히 말해 ‘농가에서의 휴양’은 하나의 확실한 문화로 자리매김을 했고 그만큼 세심한 부분까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농가식당을 하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직판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농촌을 찾고 농가에서 만든 것을 사가는 사람들과의 유대는 '돈'을 넘어서 '정'으로 맺어가는 사람들 간의 관계였다. 이쯤에서 답은 명백한 듯하다.

  농촌관광이나 교육농장은 결국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며 이룩한 문명의 상처를 자연을 통해 치유하기 위해 좀 더 여유 있는 공간으로 도시민들을 초대해 자연과의 조화를 일깨우는 일이다. 이런 일들을 하는 농민들의 긍지와 철학은 수익창출은 물론 건강한 도시와 농촌의 균형을 이루어 가는 중요한 소통의 도구인 셈이다.

  결국 우리가 유럽 선진국에서 우선적으로 배워야 할 것은 대단한 시설이나 하드웨어가 아닌 사람들 간의 관계와 소통 방식, 철학적인 신념과 섬김의 자세로 사람들이 자연 속으로 찾아 들어 시간을 보내는 일을 돕는 전통과 자연환경을 중히 여기는 본질적인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